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의 열린 굿판을 가다

 

굿은 열린 축제라고 한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주구나 그곳에서 울고 웃을 수 있다. 그런 열린 축제인 굿이 산속으로 숨어들면서(지금은 모든 굿이 전문 굿당이라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굿의 본 형태인 열린 축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초복축사 등의 기능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 열린 축제의 기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판이 바로 경기도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이다. 고성주 명인은 43년 동안 음력 37일과 107일 두 차례 맞이굿을 지동소재 271~124 자택에서 열면서 누구에게나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열린 축제의 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이 더 대단한 것은 우리 전통의 맞이굿이 선사시대부터 갖고 있는 하늘에 감사하고 수족상응(手足相應)하고 답지저앙(踏地低昻)하는옛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음력 37) 고성주 명인의 전안에서 열린 맞이굿판에서는 경기재인청의 춤과 판소리 공연까지 이어져 굿판에 모인 사람들의 흥을 고조시켰다.

 

저는 굿을 할 때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집안에 신령을 모셔놓고 밖에 나가서 맞이굿을 한다는 것은 아치에 맞지 않잖아요. 2~3백 명이 찾아와도 일일이 집에서 대접을 하고 그들에게 우리 춤과 소리를 들려주죠. 굿판은 즐거워야 하니까요

 

 

경기재인청 춤과 판소리 등 흥겨워

 

고성주 명인은 어려서부터 춤과 소리를 배웠다. 경기재인청 춤꾼들이 추던 많은 춤은 고 운학 이동안 선생에게서 사사 받았으며 그 외에 많은 소리꾼들에게서 소리를 익혔다. 경기도의 춤과 소리는 지역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경기안택굿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기재인청의 화랭이들과 강신무들의 굿에서 불리는 소리가 다른 것도 경기도의 전통예술을 다양하게 살찌운 것이다.

 

오후 5시 경이되자, 굿을 하는 도중 무용복을 입은 무희들이 전안으로 들어섰다. 고성주 명인의 굿판이 즐거운 것은 바로 이렇게 춤을 추고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고성주 명인의 문하생들이 노들강변(박경순), 엇중모리 신칼대신무(서금자), 교방무(윤혜선) 등을 추고 난 후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무용교육 석사학위 취득자인 이승은의 경기살풀이로 이어졌다,

 

이승은은 전 중양대학교 무용과 강사를 역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재원으로 경기재인청춤을 고성주 명인에게서 교습받고 있는 중에 이날 춤판에 오른 것이다. 전문춤꾼의 실력은 남달랐다. 맺고 풀어가는 춤 태가 뛰어나 구경을 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역시 전문춤꾼은 다르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박수소리도 더 요란했다.

 

 

판소리까지 곁들인 맞이굿판

 

춤 공연을 마친 후에는 판소리를 하는 조진숙이 춘향가 중 - 뺑덕어미 행실을 스승인 김승의(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적벽가 이수자)의 장단에 맞추어 불렀으며 판소리 한 대목을 양용자, 조진숙, 이정은, 강현미, 김도영 등 5명이 멋들어지게 불렀다. 맞이굿판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공연이 있기 때문에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은 늘 흥청거린다.

 

오늘 정말 좋은 구경을 했어요. 그동안 굿이라는 것에 대해 편협 된 사고를 갖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와서 직접 보니 굿판이 정말 우리 전통의 모든 것을 다 함축해 갖고 있네요. 경기안택굿도 그렇지만 춤과 소리까지 곁들인 이런 굿판이라면 언제라도 찾아와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이굿 관람을 하고 있던 이아무개(, 53)씨는 그동안 굿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굿에 대해 잘못된 시각들을 바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소리하는 경기도의 전통 굿 한마당.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 판에는 그런 경기도의 멋이 그대로 녹아있다.

 

남문시장 음악이 흐르는 밤갈수록 관객 늘어

 

시장이 젊어지고 있다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시장이 젊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시장이 늘 그대로 멎어있다면 발전이 없다는 소리다.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하고 있으니 당연히 시장도 젊게 변해야 한다. 앞으로 시장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젊은이들이 시장으로 모여들어야 한다. 하기에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을 젊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전통시장이 살 길이다.

 

글로벌명품 수원남문시장은 그런 점에서는 성공한 시장이다. 젊어졌기 때문이다. 남문시장 글로벌사업단이 가장 신경 써 기획하고 행사를 연 것이 바로 젊은 시장을 만드는 일이었고 수원시와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개장한 청년상인들의 푸드트레일러로 인해 낮에는 올드 해가지면 영시장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남문시장은 이미 전국의 많은 전통시장 중에서도 시장으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런 남문시장이 매주 토요일이 되면 남문시장 고객센터 앞에서 오후 6시부터 두 시간씩 다양한 공연을 펼침으로 많은 고객들이 즐겨 장을 찾아오도록 한 것이다.

 

 

코다브릿지에 시장 찾은 관객들 열광

 

코다브릿지는 수원여자대학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선후배가 만든 듀엣 걸 그룹이다. 예이슬 양과 서린 양 두 사람이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는 코디브릿지는 2년 정도 활동을 했지만 8개월 전 서린 양이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동문이면서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활동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상당히 호흡이 잘 맞는 팀을 이루고 있다.

 

제가 학교도 1년 선배고요. 저는 코디브릿지란 이름으로 활동한 지 2년 정도 되었어요. 그러다가 8개월 전에 서린이 함께 활동을 시작했어요. 저희들은 나름 많은 행사를 하고 있는데 주말이 되면 거의 공연에 초청되어 무대에 오르고 있고요

 

보컬 리더인 예이슬 양은 어려서부터 노래가 좋아 만화를 보는 것보다 가요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다고 하면서 노래응 부르고 싶어 대학에서 전공도 실용음악과를 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각종 행사 등에 초청되어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밤의 진행자가 젊은 듀엣 걸 그룹이 공연의 끝에 출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들의 무대를 맨 끝에 세웠다.

 

 

앞으로 더 기대를 걸만한 코다브릿지

 

저희들은 기획사가 서울 동대문 인근에 있어서 그곳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하고 노래연습과 공연 등을 감당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는 것이 끔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워요. 앞으로 더 많은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통시장이라는 안 좋은 공연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무대를 이끌어가고 있는 코다브릿지에게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앙코르를 주문한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코다브릿지. 두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서 앞으로 이 두 사람이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무대에서 코다브릿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회 초대전 연 유화향기전의 작가들

 

수원남문로데오거리는 한때 젊음이 넘쳐나던 곳이다. 수원에서 거주하는 시민 중 나이가 40대 이상이면 이 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밤새 젊음을 불사르곤 했던 것이다. 그런 남문로데오거리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은 변해버린 주변 환경 때문이다.

 

수원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은 행정, 군사, 상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갖춘 수원을 건설하기 위해 65천 냥이라는 내탕금을 수원 백성들에게 내주었다. 이 내탕금으로 공업과 상업을 촉진하였으며 18세기 말 대도회, 상업 도시 수원의 번영을 가져오게 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당시 시장은 팔달문 밖의 남시장(일명 성밖시장, 현 팔달문시장 일원)과 북수동의 북시장(일명 성안시장)으로 구분이 되었다. 정조대왕은 해남에 거주하고 있던 고산 윤선도의 후손들을 불러들여 화성 팔달문 앞의 장이 선비장으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수원의 제지 수공업 발전을 위해 4천 냥의 금융지원을 통해 북부면 지소동(현재 장안구 연무동)에 제지공장을 차렸으며, 팔달구 우만동에 소재한 비구니 가람인 봉녕사는 두부제조를 전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때 젊음으로 넘쳐나던 남문 로데오거리는 수원역에 AK백화점이 문을 열고난 뒤 직격탄을 맞은 시장 중 한 곳이다. 젊은이들은 역전으로 옮겨갔으며 거리는 동공화 현상이 일어났다. 젊은이들이 떠난 거리에 6개소나 있던 극장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젊은이들이 떠난 버린 상가거리는 황폐한 모습으로 빈 점포와 건물들이 늘어났다.

 

 

2013123남문 로데오 갤러리가 사람들에게 선을 보였다. 주차장 외벽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거대한 거리 갤러리로 탈바꿈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작품들이 이곳에 전시가 되었으며 지나는 행인들도 이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가졌다.

 

그런 남문로데오갤러리가 이번에 새로운 전시를 갖는다. ‘1회 초대전 유화향기전을 연 것이다. 429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모두 11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김규화, 김미슥, 김성애, 김해식, 손영숙, 유민경, 유순열, 윤서영, 이화진, 장은주, 정순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16일 찾아간 남문로데오갤러리에 새롭게 전시를 갖고 있는 유화향기전’. 봄철 꽃이 피는 계절에 만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모처럼 젊은이들이 찾아와 활기넘치는 남문로데오거리. 더도 말고 달도 말고 오늘같이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작가들의 작품활동도 계속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경기도의 전통적인 종합예술 그대로 간직해

 

경기안택굿은 경기도에서 전해지고 있고 집안의 평안과 식솔들의 안녕을 위한 굿이다. 경기안택굿은 타 지역의 굿과는 다르다. 우선 푸짐한 소리와 춤, 그리고 음악 등을 한 자리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굿이기 때문이다. 굿이란 과거 하늘에 감사하는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굿이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어느 특정인이나 집단의 초복축사(招福逐邪)를 하는 의식으로 변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흔히 굿은 미신(迷信)’이나 우상숭배로 치부한다. 우리나라에 이국의 종교가 전해지면서 이들은 흔히 우리 굿을 우상숭배, 혹은 미신을 믿는 행위로 간주하고 배척했다. 하지만 이런 갖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굿이 전승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우리정서와 맞는 종합예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굿을 행하는 이들을 우리는 무당(巫堂)’ 혹은 박수나 만신 등으로 부른다. 과거에는 신을 받은 이들은 남녀를 합해 무격(巫覡)’이라 통칭했다. 이런 호칭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왜 경기안택굿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흥이 나고 어깨춤이 나는지, 우리 선조들은 왜 굿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리고 일제치하에서 왜 우리 굿을 미신이라고 했는지 등을 생각보해면 굿이 주는 평안함과 그 안에 내재된 공동체를 결속하는 강력한 힘 때문이다.

 

 

종합예술의 산실 경기안택굿

 

14.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는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의 집에서 굿이 열렸다. 고성주 명인은 춤과 소리 등을 문화재급 스승들에게서 사사받은 재주꾼이다. 또한 4100년 이상 가계로 경기안택굿 전승해 온 단 한 명의 굿꾼이기 때문이다. 고성주 명인의 굿판을 만나면 절로 흥이 나는 것은 그 굿 안에 경기도의 모든 전통예술이 그대로 묻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고성주 명인의 경기안택굿은 좋아한다.

 

푸짐하게 놀이판이 벌어지는 경기안택굿은 말 그대로 과거 제천의식에서 벌어지던 악가무희(樂歌舞戱)’의 총체극이다. 종합예술인 경기안택굿은 그 놀이판 안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힘을 받는다. 그것은 종교적인 배타심과는 무관한 우리 전통적이 의식에서 전해진 우리만의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그런 수천 년을 전해진 우리의 종합예술을 단지 종교적인 모습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경기도의 판소리인 경제(京制)라는 소리와 굿을 하면서 보이는 몸짓, 그리고 경기도 특유의 음악 등이 그래도 내포되어 있다. 그런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문외한들이 미신이나 우상숭배로 배척하고 있을 뿐이다.

 

 

굿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전통문화

 

굿은 아주 오래 선사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였고, 그 굿을 통해 우리는 감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 고구려편에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시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중대회를 여는데, 이를 '동맹'이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이 시대의 고구려의 동맹이나 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등은 모두 하늘에 감사하며 사람들이 어울려 춤추고 즐겼다는 것이다.

 

우리민속 문화의 특징을 백리부동풍(百里不同風)’이라고 한다. 이 말은 백리만 떨어져 있어도 삶의 방식과 생활하는 풍속 등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민속을 구분할 때 지역적 특성을 먼저 따져본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민속 문화는 지역마다 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굿은 열린 축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굿판을 모두에게 개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집에서 굿을 한다고 하면 그 집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굿판에 가면 '굿이나 보고 먹는' 것이 옛 풍습이 아직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고 명인의 집에서 열리는 굿판은 100년 넘게 가계로 전승되고 있는 판 그대로의 모습이다.

 

 

무당은 많은데 제대로 굿을 하는 무당이 없어요라며 고성주 명인은 걱정한다. 고 명인에게서 굿을 배워나간 제자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은 굿을 제대로 베우지 않고 내 이름만 훔쳐갔다고 명인은 걱정한다. 그래서 다만 한두 명이라도 제대로 굿을 배워 경기안택굿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총체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경기안택굿. 이 흥겨운 연희판에 들어서면 절로 어깨춤이 난다. 그렇기에 난 고성주 명인이 굿을 한다고 하면 열일 젖히고 달려간다. 그곳에서 경기도의 모든 전통문화공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길벗 사생회 ‘2018 9회 정기전을 돌아보다

 

벽면에 걸린 많은 작품들이 모두 자연과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길벗 사생회 회원들이 ‘2018 9회 정기전으로 마련한 이 전시회는 길벗 회원들이 지난 1년 동안 전국의 산천을 찾아다니며 화폭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그래서 전시공간에 걸린 작품들은 대작이 아니라 들고 다니기 좋은 크기의 작품들이다.

 

49일까지 어이지는 길벗 사생회 회원들의 작품전에 참가한 회원들은 강영식, 강춘옥, 김규식, 김원정, 김지현, 김창희, 손지숙, 연현숙, 윤숙자, 조경문, 천경보 ,최정문(가나다순) 등 모두 12명의 작가들이 그린 작품들이다. 길벗 사생회란 명칭 그대로 길을 따라나서 자연과 풍경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유난히도 춥고 지루하던 겨울이 봄과 함께 물러갔습니다. 고대했던 봄, 이 봄과 함께 조그만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지난 1년간 산천을 찾아 더위와 추위를 감래하며 그린 작품들을 산보이려 합니다(하략) - 길벗일동

 

초대 글에서 보이듯 이들 길벗 사생회 회원들의 작품은 전국을 누비며 담아낸 작품들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이들 길벗 회원들은 현재 화성, 오산, 용인, 충남 태안, 수원, 서울 강남 등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04월 수원미술관에서 창립전을 연 후 매년 한 차례씩 정기전을 열고 있으며 2회의 초대전도 가졌다.

 

 

전시실서 만난 다양한 작품들

 

다양한 풍경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감동입니다. 길벗 사생회 회원들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작업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작품을 보면 작가마다 개성이 있어서 작품만 본다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전시실에서 만난 이아무개(, 44)씨는 자신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함께 본 경치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길벗 사생회 회원들의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작가들은 각자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길벗 사생회 전시는 그런 면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매년 길벗 사생회 전시를 찾아가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5일 충남 서산과 대천을 돌아오면서 들린 수원미술전시관. 9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나의 문화재답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전국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문화재를 답사해 온 나로서는 답사를 다니면서 돌아본 경치가 이 전시에 가끔 등장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면서 기억 떠올려

 

전시관 등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관람하다보면 낯익은 풍경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언젠가 답사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정겨운 곳이다. 그럴 때는 작가와 내가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괜히 으쓱해지기도 한다. 혼자 무작정 걸으면서 답사를 하는 나로서는 그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혼자 하는 답사의 외로움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원미술전시관에서 만난 길벗 사생회의 작품들. 작가마다 개성있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 크지 않은 작품 안에는 작가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빗길을 달려와 만난 작품들을 돌아보다가 한 곳에 눈이 멈춘다. 한옥의 작은 대문을 그린 곳. 바로 송광사 설법전으로 들어가는 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많은 전시가 열린다. 그런 전시를 찾아가 봄을 느끼고 작가들의 작품 속에 내재된 정신을 느낄 수 있다면 이 나른한 봄날도 활기가 넘쳐나게 된다. 며칠 남지 않은 전시기간. 수원미술전시관을 찾아가 작가들의 여행에 동참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