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꽉 메운 한옥마을을 찾은 사람들

 

수원 행궁동 일원과 전주 한옥마을 무엇이 다른가?

 

살다가 인생이 재미가 없거나 삶에 지쳤거든 주말에 전주한옥마을을 찾아가세요. 그곳에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세요. 그저 길가 아무 곳에나 앉아 지나는 사람들만 보고 있어도 힘이 솟아오릅니다.”

 

27일과 282일 동안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고 난 후,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곳은 이미 그저 한옥마을이 아니었다. 한 해에 한옥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일천만명. 그 중 80%가 외지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 도시도 아닌 풍남동과 교동이라는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벌어들이는 경제 효과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한 점포에서 하루에 올린 매상이 수천만원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처음에는 설마하며 웃었는데 정작 한옥마을에 찾아와 보니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보세요, 이 길가에 사람들을. 이들이 모두 대여한 한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잖아요. 4시간에 만원이라고 하는데 한복만 대여해서 하루에 300만원의 매상을 올린집도 있다고 하네요

 

이목대에서 내려다 본 한옥마을의 지붕들 

 

한옥마을에서 만난 이아무개(, 44).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이씨는 자신도 두 딸과 함께 한옥마을에 와서 1박을 했지만 이런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 줄은 몰랐다고 한다. 주말에 한옥마을 중요도로는 차량통제를 하고 있어 그야말로 관광객들의 지상낙원으로 변한다. 길거리마다 즐비하게 자리 잡은 각종 먹을거리 또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우리 아이도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왔는데 23일 동안 여행경비 18민원을 학교에 내고 아이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돈 10만원을 주었으니까, 이곳에서 사용하고 온 돈이 숙식비를 포함해 30만원 가까운 돈을 쓴 것이죠. 일 년이면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정말 이 한 마을에서 어마어마한 경제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죠

 

한옥마을을 찾은 학생들이 한복으로 치장하고 즐기고 있다

  남녀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한옥마을 전체가 흥겨운 놀이판

 

이틀 동안 돌아본 한옥마을은 우리들이 알던 세상과는 별천지였다. 흡사 조선시대로 회귀를 한 것 같은 분위기이다. 거리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거리도 젊어진다. 나이가 느긋한 어른들은 찻집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을 띠운다. 여기저기 풍악소리가 울리는 한옥마을은 그저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5년 전에 나도 이곳 인근에서 몇 년인가를 살며 거의 날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 5넌 전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당시의 한옥마을은 관광객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떻게 길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옥들로 인해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마을을 돌아보면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위대한 승리라는 것에 감탄을 한다. 한 마디로 한옥마을 전체가 놀이판이 된 것이다.

 

한옥마을에는 한복대여점이 곳곳에 있어 누구나 한복을 입고 즐길 수 있다

  수학여행을 온 여학생들이 경기전 안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대박'이라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마침 한옥마을에서는 제34회 전국대사습대회 학생전국대회가 28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기간이다. 이목대, 경기전, 풍남문광장 등 한옥마을 일원 가는 곳마다 소리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길거리 곳곳에 대사습유랑단이라 쓴 윗옷을 걸친 젊은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연주를 하는 학생들은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연주를 하고, 지나던 관광객들도 가장 편한 자세로 구경을 한다.

 

이 넓지 않은 공간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소리를 한다. 음악소리가 나서 따라가 보면 신명나게 순서를 기다리는 대사습 참가학생들의 연습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공연이 된다. ‘국악의 도시 전주’, 그 말이 이렇게 실감이 날 수 없다. ‘노다가세 노다나가세라는 부제를 둔 대사습놀이는 그저 사람들이 절로 놀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이다.

 

전주학생대사습에 참가한 학생이 이목대 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전 대금연습을 하고 있다

  학생대사습 무용경연에 참가한 한 학생이 승무춤을 연습하고 있다

 

수원 행궁동과 전주 한옥마을 이것이 다르다

 

수원 화성 안 행궁동에도 요즈음 한옥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집을 한옥으로 개조하는 것은 보기가 힘들다. 수원시에서 매입한 토지나 건물들을 한옥으로 개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날마다 한옥으로 개조공사를 하고 있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벌써 700여동이나 되는 한옥들이 들어섰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추세라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건너 전주읍성 풍남문 일대에는 전주남부시장이 있다. 수원 화성 팔달문 밖에는 9곳의 인정시장이 있다. 전주남부시장은 지난해에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지장이 되었고, 수원 남문시장(팔달문 밖 9곳의 통합시장)은 올해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협약식을 맺었다. 수원과 전주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 양상은 전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은 이미 전국 최고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거기에 비해 수원 행궁동과 남문시장은 이제 변화를 시작했다. 과연 이 두 곳을 비교는 할 수 있을까? ‘절대불가란 없다.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의식과 노력이 차이이다.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수많은 노력을 한 곳과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는 의식의 차이이다.

 

수원 화성 행궁동 안에 한옥이 좀 더 많이 늘어선 거리가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그렇지 않다.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한옥이 있다고 해도 전주한옥마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우는 아이 젖 주기식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일대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전주 한옥마을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옥마을 어디서나 길을 다니면서 먹을 것을 먹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옥마을은 스스로 변화를 했다. 그들은 한옥마을을 살리기 위해 한옥을 늘리고 자신의 점포 앞을 개방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쉴만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나가던 관광객 누구라도 들어가 잠시 쉬겠다고 하면 흔쾌히 허락을 하고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내온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하나라도 구해야 한다.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왔다가 떠나는 사람마다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는 이유이다.

 

수원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단 몇 집을 돌아다녀보아도 목소리가 높아진다.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 의식과 개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전주 한옥마을은 그저 꿈같은 곳이다. 그들의 변화는 먼저 지신을 버리고 모두의 이익을 앞장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찾았다. 정신의 변화를 먼저 시작한 것이다. “수원 행궁동은 절대 전주 한옥마을을 따라갈 수 없다하지만 늦은 것이란 없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전문가 집단이 탁상공론을 하는 자들이라면 기대할 바가 없다. 현장에서 직접 뛰어 본 전문가들이라야 변화가 가능하다. 탁상공론으로 인해 망쳐진 환경과 계획을 수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전주 한옥마을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전주한옥마을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변화가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꿈까지 깨지는 않을 생각이다. 노력하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구 125만의 전국 지자체 중 최고의 도시 수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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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소재한 중요민속문화재 149호인 몽심재는, 층이 진 대지에 지은 집으로 지형을 잘 이용해 한옥의 멋을 극대화한 집이다. 몽심재는 조선 말기 박동식이 처음으로 지었는데, 현재는 그의 7세손인 박인기가 살고 있다. 몽심재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낮은 구릉이 자리를 하고 있다.

 

몽심재를 찾아간 날 아침부터 날이 차갑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12월의 날씨에 찾아간 곳 몽심재. 한옥은 목조건물이라 불에는 약할 수밖에 없다. 몽심재의 건물 구성은 층이 진 산자락을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도 높게 자리를 하고 있다. 건물마다 층이 진 것도 몽심재의 특징이다.

 

 

 

대문에 누정이 있는 몽심재

 

몽심재는 산자락에 집을 지어, 층을 지어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 맨 아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대문채이다. 대문채는 밖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반가의 솟을대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돌계단 위에 넓은 터가 있고, 그 우측으로는 여러 글씨를 음각을 한 커다란 바위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측 한편에는 연못을 파 흐르는 물을 담아두었다. 아무래도 비탈이 진 집의 구조상, 많은 물이 이 연못으로 흘러들 것만 같다. 그 돌로 주변을 쌓은 연못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멋이 있는 경치가 있으면 그것을 그냥 놓고 볼 선조들이 아니다. 몽심재를 지은 박동식 역시 풍취를 아는 분이였는지. 대문채 끝에 개방된 누정을 만들어 연못과 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사랑채보다 높은 중문채

 

넓은 터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돌로 쌓은 축대가 있고, 그 위에 사랑채를 두었다. 사랑채가 바로 몽심재이다. 비탈진 곳에 집을 짓다보니, 사랑채의 돌 축대가 상당히 높게 자리하고 있다. 크고 작은 멋대로 생긴 돌들이 보이는 조화감, 이것도 몽심재의 또 다른 멋이 아닐까? 그저 몽심재 여기저기를 돌다가 보면,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집이다.

 

사랑은 바라보면서 좌측 방을 난간을 두른 누정을 삼고, 좌우측 툇마루는 앞으로 돌출을 하였다. 그리고 댓돌이 있는 곳은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섯 칸의 사랑채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펼쳐지는 대밭으로 된 구릉과, 대문채의 연못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진 집이다.

 

사랑채 우측으로는 중문이 있다. 이 집의 중문은 사랑채보다 높게 자리하고 있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랑채 옆으로 높게 자리를 한 중문이 보인다. 이렇듯 모든 건물이 산자락을 따라 층계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물을 지은 몽심재의 아름다움이다.

 

 

 

안채 안방의 부엌이 뒤쪽에 있다니

 

몽심재의 안채는 자형이다. 안채 역시 부엌과 방이 높이가 다르다. 그래서인가 안채 한편을 외양간으로 사용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 안채의 건넌방에 붙은 부엌위로는 다락을 두었는데, 마치 이층집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안방에 불을 떼는 부엌이 보이지를 않는다.

 

마침 사람이 있기에 안방의 부엌이 어디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뒤편으로 돌아가 보란다, 뒤편에는 광채와 산자락에 만든 넓은 밭이 보인다. 그런데 그 한편에 툇마루를 둔 안방의 뒤쪽이 있다. 그곳에 부엌이 자리를 하고 있다. 안방의 부엌이 집 뒤에 자리를 하고 있다니. 수많은 고택 답사를 하면서도 이런 구조는 본 일이 없다.

 

주변 경관과 함께 고풍스런 멋을 보이고 있는 남원 몽심재. 과연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지어진 집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집에서 한 철을 묵을 수만 있다면. 괜한 생각을 하면서 대문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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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원예촌 조성사업 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남원예촌을 우리나라 최고 품격 · 최고 건축양식의 한옥체험 단지로 조성 할 계획이며, 올해 말 1 지구 준공을 목표로 분야별 명장들의 혼을 담아 한옥숙박 체험단지 조성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단계 남원예촌 조성사업은 광한루원 북문 주변 17,400 에 총사업비 272억 원을 투자하여 전통한옥 및 문화 체험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1지구 전통 숙박 체험단지 ( 2015 년 준공 )2지구 남원 한국의 집(2016년 준공)을 단계적으로 조성 할 계획이다. 남원예촌이 완공되면 광한루원과 구도심권을 연계하는 문화관광 거점 인프라로서 구도심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고의 명장들이 15동의 전통한옥단지 조성

 

전통한옥 숙박체험단지 (1지구)는 연말 개관을 목표로 총 15 동의 전통한옥이 들어선다. 이곳에는 고품격 전통한옥 숙박동, 기업연수 및 세미나 개최를 위한 예촌관, 전통 정자와 연못, 쉼터, 관리사무소 등이 조성되어 남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전통한옥의 맛과 여유를 즐기는 공간으로 조성된다 .

 

남원예촌은 우리나라 최고의 한옥 명장들이 시공에 직접 참여하여 혼을 담은 명품· 명작으로서 국내 전통 한옥분야를 대표하는 최기영 대목장과 전통기와 잇기 대가인 이근복 번와장, 전통구들장(온돌) 과 황토흙벽 시공에 문화재 공사 토수분과 유종 위원장 등 대표적 한옥명장들이 모여 최고의 명품 숙박단지 조성을 위하여 각 분야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최기영 대목장은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74)로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으로 지정됐으며, 부여 백제재현 단지를 비롯해 봉정사 극락전, 경주 월정교 복원공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전통 한옥계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또한 이근복 번와장은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제(121)로서 우리나라 유일의 기와잇기 시공 전문 기술자이며, 숭례문을 비롯한 우리나라 문화재들은 다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 수리기능 제 4669호를 부여받은 유종씨는 한국전통구들협회 회장으로 전통 문화재와 구들 시공의 전문가로 내손으로 구들 놓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

 

 

 

옛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

 

특히 남원예촌은 주요 목부재에 우리나라 육송, 난방에 전통 구들장(온돌), 벽체에 황토흙벽, 옻칠 등 타 지역과 차별화 된 순수 고건축방식의 전무후무한 명품 한옥단지로 조성하고 있다.

전통 구들은 우리 선조의 지혜가 집약 된 세계 유일의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난방 방식으로 수천 년 동안 추운 겨울 우리의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워 준 민족 공동의 문화유산이다 .

 

전통 구들방 에서 잠을 잘 경우 원적외선 발산으로 열기를 온몸으로 전달하여 체온을 높이며 ,이로 인해 잔병을 없애준다. 또한 구들의 그을림은 지하수맥을 차단 해주며 장작을 땔 때 발생되는 원적외선은 여성들의 자궁암 발병률을 줄여 주는 등, 구들은 그 가치와 효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구들의 장점을 활용하여 , 관광객들이 아궁이에 장작(땔감)을 때며 가마솥에 옥수수고구마감자 등을 삶아 먹는 등 전통체험 시설에 역점을 두고 만들어 가고 있다. 벽체는 전통황토 흙벽(외엮기 + 황토 + + 미역 , 다시마 끓인 물)으로 우리 몸에 좋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여 방안의 공기를 순환시켜, 한옥에서 숙박체험 시 머리를 맑게 해주는 등 우리 몸에 가장 좋은 전통방식으로 시공되고 있다.

 

그리고 전통한옥이 화재 및 곰팡이 , , 흰개미 등에 의한 파손에 취약한 점을 내, 외부 건축 목부재에 옻칠 작업을 통해 개선하였으며, 전자파 차단, 방수성, 방청성 등 옻칠의 장점을 살려 목부재의 내구성을 강화하였다.

 

 

 

이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옻칠의 본고장인 남원의 최고비법을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더 큰 의미가 있으며, 팔만대장경 등 문화재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되었던 것을 한옥 건축에 도입하였다는 점 등, 타 전통한옥 단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명품 건축을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금년말 명품 숙박 체험단지 완공과 개관을 목표로 남원예촌 1지구 조성사업에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남원예촌의 명품 숙박단지 개관을 시발점으로 구도심권내 관광 인프라 시설을 구축하여 명실상부한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문화도시 남원의 새로운 랜드 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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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석 선생은 이재난고30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대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조 영조 5년인 1729, 전북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서 출생을 하였다. 63세에 일생을 마친 선생은 군자는 한 가지 사물이라도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다양한 학문을 연구한 분으로 유명하다.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는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25호인 황윤석 생가는, 선생이 출생한 집으로 부친 황전이 세운 집이다. 높은 축대 위에 7칸으로 된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와 문간채, 사당 등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초가로 된 안채와 그 앞에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 광채가 남아있다. 사랑채와 문간채는 불타버렸던 것을 190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초가의 기품을 지닌 사랑채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마련한 사랑채는 모두 4칸으로 꾸며졌다. 이 중 사랑채를 바라보면서 좌측의 한 칸은 앞으로 돌출이 되게 해, 정자방으로 꾸몄다. 툇마루 역시 앞으로 돌출이 되었으며, 마루방을 비롯한 모든 방은 창호를 달아냈다. 덤벙 주추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운 사랑채는 그저 학자의 집처럼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기품이 엿보인다.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에는 쪽문인 일각문을 판자문으로 두어 안으로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랑채와 대문으로 이어진 대문채는, 사랑채와 합해 자 형으로 되어있다. 대문채는 두 칸의 방을 드렸으며, 흔히 보이는 헛간채 등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불에 탄 것을 복원을 하면서 변형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축대 위에 세운 안채

 

안채는 7칸으로 꾸며졌다.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7칸의 집을 - 자로 지었다. 안채를 바라보면서 동쪽의 맨 끝은 마루를 놓고, 이어서 한 칸의 방과 두 칸의 대청, 그리고 안방과 부엌의 순으로 나열을 하였다. 대청의 북쪽 벽 위에는 평해황씨 선조의 위폐를 모신 곳이 있다고 하나,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볼 수가 없다.

 

안채는 동쪽에 툇마루를 놓았는데 방의 끝까지 이어지도록 하였다. 예전에는 꽤나 운치있는 집으로 꾸며진 듯하다. 모든 문이 걸려있어 안을 확인할 수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니 시원하게 판자벽 위에 까치구멍을 내었다. 문을 열면 부뚜막 옆에 커다란 독을 묻어놓았다. 아마 물독인 듯하다.

 

 

 

안채의 뒤편에는 예전에는 사당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빈 터만 남아있다. 안채의 동쪽에는 2단의 축대 위에 지은 광채가 있다. 5칸으로 꾸며진 광채는 양편에 문을 달고 판자벽으로 꾸몄다. 마루를 깐 광채는 땅에서 10cm 정도를 높여 습기를 막았다. 광채의 문에는 쇠고리를 달았는데, 이 집의 역사만큼이나 고풍스럽다.

 

이 집에서 황윤석 선생은 당대의 대유학자인 김원행의 문하에서 실학을 접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호남 실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10세부터 63세 까지 54년간의 일상을 기록한 이제난고를 비롯하여 역대운어, 이수신편, 성씨운휘30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문학, 경제, 예학, 사학, 종교, 천문, 지리, 언어, 예술, 의학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박학한 지식을 갖춘 선생이 태어났다는 이곳 생가. 집안 곳곳에 배어있는 겸손이 눈이 띠는 듯하다. 화려하지 않은 집이 그저 선생의 기품을 닮은 듯하다. 집을 돌아보면서도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걷는 것은. 행여 선생의 학문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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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강골마을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이 마을에는 정자이면서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이 될 만큼 아름다운 열화당이 있다. 또 중요민속문화재 제157호인 이금재 가옥과 제159호인 이용욱 가옥도 찾아볼 수 있다. 고택 답사를 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기억에 남을 만한 집을 친다면 당연히 이용욱 가옥일 것이다.

 

집이 균형 있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그러하지만, 이용욱 가옥에는 담장에 '소리통'이라는 희한한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이 소리통이 주는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은, 그 어떤 것도 견줄 바가 아니다. 이용욱 가옥은 강골마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헌종 1년인 1835년 이진만이 지었다고 한다. 이용욱 가옥은 5칸의 솟을대문인 대문채(행랑채), 사랑채, 중간문채, 곳간채, 안채, 사당과 연못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사랑채 앞마당 담장에 난 소리통은 무엇?

 

이용욱 가옥을 돌아보면 '집이 참 이렇게 꾸며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만큼 집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반듯하다. 그러나 굳이 이 집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것 보다는, 사랑채와 대문채의 사이에 있는 넓은 앞마당 담장에 있는 구멍 하나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도대체 담장에 저 구멍은 무엇일까?

 


이 작은 구멍을 '소리통'이라고 한다. 이곳에 대고 무슨 소리라도 지른다는 것이 아니다. 이 소리통의 크기는 10cm × 20cm 정도이다. 사랑채에서 대문을 바라보면서 좌측담장 중간쯤의 사람 눈 높이에 이 구멍이 나 있다. 이 소리통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 담장 밖을 살펴보았다.

 

대문을 나서 좌측으로 돌면 옆집과의 담장사이에 길이 하나 나온다. 그저 좁은 골목길쯤으로 생각을 하면 될 만한 그런 길이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가니 이용욱 가옥의 담장이 조금 안으로 들어가고, 그 곳에 우물이 있다. 우리가 흔히 공동우물이라고 하는 곳이다. 이 소리통은 그 우물과 안마당을 막은 담장 가운데에 나 있는 것이다.

 

이용욱 가옥의 담장 밖에는 마을에서 가장 물 좋기로 소문난 공동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소리통

 

이쯤 되면 이 소리통이 무슨 용도로 쓰였을 것이라고 답이 나오지 않을까? 우물이라는 곳은 마을의 아낙네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우물에 모인 아낙네들의 수다야,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누구는 어떤 짓을 했는지. 누가 살기가 어려운지, 우물가에 모인 아낙네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 수다 가운데는 양반을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더러는 누구누구는 어떤 염문을 뿌렸는지도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런 우물가의 이야기가 소리통을 통해 안으로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그저 벽에 귀를 갖다 대지 않고 근처만 가도 밖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린다. 함께 답사에 동행한 일행에게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했다. 신경을 쓰고 들을 필요도 없다. 바로 귀에 대고 말을 하듯 그대로 다 들린다. 결국 담장 너머 우물가에서 수다를 떨면서 나온 마을의 모든 정보가, 이 소리통을 통해 하인들에게로 전해지고, 한발에 달려갈 수 있는 사랑채의 주인 어르신께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대문채와 마주한 사랑채. 넓은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이용욱 가옥의 대문은 처음에는 3칸이었다. 그러던 것을 이방희의 손자인 이진래가 5칸으로 개축을 했다

 

이용욱 가옥은 지방 사대부가를 대표하고 있는 집이다. 이 집에 사는 양반네들은 마을에서는 추앙을 받고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에게서 대접을 받고 살기 위해서는, 마을사람들의 아픈 곳을 알아서 어루만져 주는 지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랫사람들이 양반집에 찾아가 '나 어디가 아프오'라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 이 소리통은 그런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마을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교류의 창구 역할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양반들을 욕하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을 테지만.

 

이 소리통이 하인들에게는 어떤 용도였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소리통으로 바깥 우물 쪽을 내다보았다. 세상에, 우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밖으로 나가 우물에서 소리통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앞마당 밖에는 보이지를 않는다. 참 묘한 소리통이다. 사랑채와 대문채의 사이 담장에 자리를 잡은 소리통. 대문채는 하인들이 생활공간이다.

 

이용욱 가옥의 대문은 처음에는 3칸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이방희의 손자인 이진래가 5칸으로 개축을 했다는 것이다. 앞마당에서 보면 좌측에는 두 칸의 방이 있고, 우측에는 한 칸의 방이 있다. 왜 대문채를 넓히고 방을 더 드렸을까?

 

담장의 중간쯤에 소리통을 뚫어놓았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 대문을 넓힌 이진래의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을 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혼자 키들거린다. 여름철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오면, 땀도 많이 나고 온몸이 꿉꿉하다. 그럴 때 시원한 찬물이라도 끼얹으면 날아갈 듯하다. 마을 사람들은 해가지고나면 하루 종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이 우물에 와서 씻고는 했을 것이다. 이 우물은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면, 더위도 가시지만 미용에도 좋다는 마을 분들의 이야기다.

 

젊은 하인들이 물소리를 들으면 잠이 올까? 아마 이 소리통을 통해서 담 너머에 있는 우물을 힐끗거렸을지도 모른다. 달이 으슥하면 남의 이목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테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결국 이 소리통은 집의 어르신은 정보를 수집하는 창구로, 대문채에 머문 머슴들은 야릇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은밀한 창으로 이용을 했을 것만 같다.

 


소리통 하나만 갖고도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는 보성의 이용욱 가옥. 그래서 고택을 답사하는 길이 늘 힘든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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