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속촌, 홍보전단지 한 장이 준 감동

 

용인에 소재한 한국민속촌을 찾아가는 것은 그 안에 볼 것이 많기도 하지만 수원 팔달산 밑에 소재했던 남창동의 99칸의 고택 중부지방 양반가 때문이다. 이곳을 찾아갈 때마다 빠트리지 않고 들리는 양반가는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만일 이 고택이 아직도 제자리에 있다고 하면 훌륭한 민속문화재가 될 테고 이 집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 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는 곳이다.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드는 것은 볼 것도 많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즐길거리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민속촌 안에 들어설 때마다 늘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줄타기며 풍물놀이, 널뛰기 등도 볼 수 있지만 정월 대보름 때가 되면 달집테우기와 서원지 쓰기 등 사람들이 이곳에 들려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민속촌에 들어가 입구에서좌측 상가마을과 우측 놀이마을을 지나 좌측 산길로 들어서면 금련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곳 또한 내가 꼭 들리는 곳 중 한 곳이다. 가을이 되면 만추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금련사는 <무봉산 금련사>라고 현판을 단 일주문이 서있다. 금련사는 대전 유성에 있던 절집을 옮겨다 놓은 사찰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한국민속촌은 전국 팔도의 가옥은 물론 장터와 다양한 즐길거리들이 있기 때문에 계절마다 한 번은 꼭 들리는 곳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대보름이기에 한국민속촌을 찾아가야지라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19일 오후 남문시장 홍보관을 들렸다가 우연히 한국민속촌을 소개하는 홍보전단을 보게 되었다.

 

 

작은 홍보지 하나에 담긴 수많은 내용

 

홍보관 홍보물 거치대에 있는 수많은 홍보전단 중 유별나게 눈에 띠는 작은 전단지. 4개 국어로 제작된 이 작은 전단지가 왜 그렇게 눈길을 끌었을까? 제목만 보고 수원을 소개하는 전단지인 줄 알았다. “우리와 함께 조선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겠소?”라는 문구가 수원시의 행궁이나 수원의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전단지인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국민속촌 홍보전단지를 많이 가져가요. 그만큼 알차게 꾸며진 전단지기 때문인 듯해요. 저희도 많은 전단지 중 한국민속촌 전단지가 가장 눈에 띤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 생각은 모두 같은가 봐요

 

굳이 홍보관 근무자의 설명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홍보물 가운데 눈에 두드러지게 띤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전단지를 펼쳐보니 안에 소개하고 있는 것들만 갖고도 한극민속촌을 힘들이지 않고 돌아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홍보물은 누가 쉽게 접하고 그것을 보는 순간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홍보물, 우리도 더 연구해야

 

물론, 사람마다 홍보물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다. 이 홍보물을 보고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크지 않은 이 전단 한 장이 주는 효과는 엄청나단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도 눈에 띤다고 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한국민속촌의 롱보전단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 수원은 문화관광의 도시이다. 일 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제 곧 천만 명 관광시대를 열 것이다. 그런 수원은 많은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다. 그 홍보물 중에서는 수원을 한 눈에 알리는 전단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장의 전단지가 더 눈길을 끌었나 보다.

 

남문시장 홍보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민속촌의 안내전단지 한 장. 그것을 보면서 한국민속촌을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이 전단지는 성공을 한 셈이다. 크지 않은 전단지 한 장이 홍보물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만든다.

옛날 조상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아궁이에서 불을 때어 따뜻한 불기운이 방바닥 전체의 온도를 높여 주고 굴뚝으로 연기가 빠지게 만들어 놓은 구들이라는 독특한 난방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여기 명품 한옥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남원예촌과 함파우소리체험관에서 아늑하고 따스한 아랫목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남원예촌]
남원예촌은 자연 친화적 소재인 목재, 황토 흙벽, 전통 구들장, 옻칠 등 오롯이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옛 선조들의 지혜를 담아 순수 고건축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명품 한옥입니다. 
 

                   


남원예촌은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한 최고의 문화재 명인들이 옛 선조의 지혜와 가치를 살리고 공정마다 혼을 담아 품격을 더하기 위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시멘트와 스티로폼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황토, 대나무. 해초 등 오롯이 자연에서 얻은 귀한 재료들로 순수 고건축 방식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구들장(온돌) 은 물론이고, 마무리 작업은 옻칠의 본고장 남원의 세계최고 옻칠 기법을 적용하는 등 기품 넘치는 전통의 멋을 간직한 명품 한옥입니다.

 

 

또한 숙박객들이 아궁이에 직접 장작(땔감) 을 때며 가마솥에 옥수수, 고구마 등을 삶아 먹는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남원예촌에서 특별한 하룻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홈페이지
www.namwonyechon.com / 063-626-8001


 


함파우 소리체험관]
함파우 소리체험관은 남원시 노암동 함파우 유원지에 위치해 있으며 , 좌도 농악의 중심지인 우리 남원에서 전수와 공연 , 자료 보존과 많은 사람에게 우수성을 알리기위해 건립되었고 함파우는 고유의 지명으로 물결이 머무는 고요한 곳
이란 뜻이 있습니다.

또 남원에서 손꼽히는 정남향 명당으로 땅의 기운이 왕성한 곳입니다. 숙박동은 전통구들방식으로 참나무 장작만을 사용하고, 체험관 앞 저수지도 기존의 저수지를 살려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전통 한옥에서 참나무 장작난방 숙박이 이루어지며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습니다. 전통 한옥 숙박체험은 사전 신청을 통해 참여 가능합니다.
[남원시 통합예약시스템 바로가기] / 063-620-5748~9(남원시)

 

 

 

 

가을철 놀이에 빠진 사람들 부러워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지난 28일 잠시 틈을 내어 가까운 여주로 달려갔다. 매주 한번은 이웃 도시에 있는 문화재와 명소 등을 찾아보는 것이 요즈음 유일한 낙이다. 마침 날씨도 좋고 단풍철이라 길이 많이 막힐 줄 알았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영동고속도로애도 그렇게 많은 차들이 몰리지 않는다. 수원을 출발해 한 시간 남짓 걸려 명성황후 생가에 도착했다.

 

여주시 여주읍 명성로 71(능현리)에 소재한 명성황후 생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閔維重)의 묘막으로 숙종 13년인 1687년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인 1851년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인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벌써 몇 차례나 이곳을 들렸지만 들릴 때마다 가슴 한 편이 아린 것은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 잘 보여줘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복원이 되었다고 하지만 집안을 돌아보면 여염집치고는 잘 정돈된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양편으로 행랑채가 늘어서 있다. 여흥민씨는 우리나라 역사 상 8명의 왕비를 낸 유서깊은 문중이다. 그런 여흥민씨의 집터는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행랑체보다 높게 터를 잡고 있는 중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사랑채가 자리하고 안으로 안채가 자리한다. 행랑채와 안채는 자 형으로 전형적인 중부지방 가옥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 안채는 중문과 이어져 부엌과 안방이 자리하고 대청과 건넌방이 이어져 있다. 건넌방의 툇마루는 높게 놓고 아래편에 아궁이를 놓았다.

 

 

사랑채는 남자들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높게 앉은 사랑채 밖으로는 집 앞에 널려진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곳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지는 부분에 작은 협문을 내어 별당채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별당채는 일자형 초가로 방과 대청이 있는데 이 별당채가 바로 명성황후가 8살까지 자랐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파란만장한 한국근대의 격동기 속에서 갑오동학혁명 이후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다가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의 사주를 받은 일본 낭인에 의해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 현재는 명성황후 생가 앞에 기념관을 짓고 일본에서 생가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고택이 부럽다

 

명상황후 생가 옆에는 민가마을을 조성해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생가를 찾아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명성황후 생가 정비를 하면서 서울에 있던 감고당을 옮겨오고 민가마을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주변에는 연못과 공터를 마련하고 앞으로는 넓은 주차공간을 마련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연못에는 어린 아이들이 단체로 찾아와 연못에서 자라고 있는 커다란 물고기들을 보고 대화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참 천진난만하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연과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마련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부럽다. 우리 수원의 행궁동에도 한옥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즐길만한 곳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요즈음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이나 가족단위로 함께 즐길 곳을 찾아다닌다. 그런 곳을 마련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수원을 찾아올 것이란 생각이다. 한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전국의 고택답사를 하면서 늘 아쉬웠던 점은 바로 민속촌에 소재하고 있는 남창동 양반가옥이다.

 

99칸의 대저택이 수원에 그대로 있었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여주 명성황후 생가를 돌아보면서 우리에게도 저런 공간 하나 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을 꽉 메운 한옥마을을 찾은 사람들

 

수원 행궁동 일원과 전주 한옥마을 무엇이 다른가?

 

살다가 인생이 재미가 없거나 삶에 지쳤거든 주말에 전주한옥마을을 찾아가세요. 그곳에서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세요. 그저 길가 아무 곳에나 앉아 지나는 사람들만 보고 있어도 힘이 솟아오릅니다.”

 

27일과 282일 동안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고 난 후,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곳은 이미 그저 한옥마을이 아니었다. 한 해에 한옥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일천만명. 그 중 80%가 외지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 도시도 아닌 풍남동과 교동이라는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벌어들이는 경제 효과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한 점포에서 하루에 올린 매상이 수천만원을 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처음에는 설마하며 웃었는데 정작 한옥마을에 찾아와 보니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보세요, 이 길가에 사람들을. 이들이 모두 대여한 한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잖아요. 4시간에 만원이라고 하는데 한복만 대여해서 하루에 300만원의 매상을 올린집도 있다고 하네요

 

이목대에서 내려다 본 한옥마을의 지붕들 

 

한옥마을에서 만난 이아무개(, 44).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이씨는 자신도 두 딸과 함께 한옥마을에 와서 1박을 했지만 이런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 줄은 몰랐다고 한다. 주말에 한옥마을 중요도로는 차량통제를 하고 있어 그야말로 관광객들의 지상낙원으로 변한다. 길거리마다 즐비하게 자리 잡은 각종 먹을거리 또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우리 아이도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왔는데 23일 동안 여행경비 18민원을 학교에 내고 아이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돈 10만원을 주었으니까, 이곳에서 사용하고 온 돈이 숙식비를 포함해 30만원 가까운 돈을 쓴 것이죠. 일 년이면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학생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정말 이 한 마을에서 어마어마한 경제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죠

 

한옥마을을 찾은 학생들이 한복으로 치장하고 즐기고 있다

  남녀 젊은이들이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한옥마을 전체가 흥겨운 놀이판

 

이틀 동안 돌아본 한옥마을은 우리들이 알던 세상과는 별천지였다. 흡사 조선시대로 회귀를 한 것 같은 분위기이다. 거리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거리도 젊어진다. 나이가 느긋한 어른들은 찻집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을 띠운다. 여기저기 풍악소리가 울리는 한옥마을은 그저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5년 전에 나도 이곳 인근에서 몇 년인가를 살며 거의 날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 5넌 전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당시의 한옥마을은 관광객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떻게 길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변화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한옥들로 인해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마을을 돌아보면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위대한 승리라는 것에 감탄을 한다. 한 마디로 한옥마을 전체가 놀이판이 된 것이다.

 

한옥마을에는 한복대여점이 곳곳에 있어 누구나 한복을 입고 즐길 수 있다

  수학여행을 온 여학생들이 경기전 안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대박'이라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마침 한옥마을에서는 제34회 전국대사습대회 학생전국대회가 28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기간이다. 이목대, 경기전, 풍남문광장 등 한옥마을 일원 가는 곳마다 소리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길거리 곳곳에 대사습유랑단이라 쓴 윗옷을 걸친 젊은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연주를 하는 학생들은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연주를 하고, 지나던 관광객들도 가장 편한 자세로 구경을 한다.

 

이 넓지 않은 공간 여기저기서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소리를 한다. 음악소리가 나서 따라가 보면 신명나게 순서를 기다리는 대사습 참가학생들의 연습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공연이 된다. ‘국악의 도시 전주’, 그 말이 이렇게 실감이 날 수 없다. ‘노다가세 노다나가세라는 부제를 둔 대사습놀이는 그저 사람들이 절로 놀 수 있게 만들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이다.

 

전주학생대사습에 참가한 학생이 이목대 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전 대금연습을 하고 있다

  학생대사습 무용경연에 참가한 한 학생이 승무춤을 연습하고 있다

 

수원 행궁동과 전주 한옥마을 이것이 다르다

 

수원 화성 안 행궁동에도 요즈음 한옥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집을 한옥으로 개조하는 것은 보기가 힘들다. 수원시에서 매입한 토지나 건물들을 한옥으로 개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날마다 한옥으로 개조공사를 하고 있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벌써 700여동이나 되는 한옥들이 들어섰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추세라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 건너 전주읍성 풍남문 일대에는 전주남부시장이 있다. 수원 화성 팔달문 밖에는 9곳의 인정시장이 있다. 전주남부시장은 지난해에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지장이 되었고, 수원 남문시장(팔달문 밖 9곳의 통합시장)은 올해 글로벌 명품시장으로 협약식을 맺었다. 수원과 전주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 양상은 전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전주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은 이미 전국 최고라고 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거기에 비해 수원 행궁동과 남문시장은 이제 변화를 시작했다. 과연 이 두 곳을 비교는 할 수 있을까? ‘절대불가란 없다. 노력해서 안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의식과 노력이 차이이다.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수많은 노력을 한 곳과 주어진 일을 처리한다는 의식의 차이이다.

 

수원 화성 행궁동 안에 한옥이 좀 더 많이 늘어선 거리가 있었다면 가능했을까? 그렇지 않다. 주민들의 의식의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한옥이 있다고 해도 전주한옥마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우는 아이 젖 주기식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일대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전주 한옥마을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옥마을 어디서나 길을 다니면서 먹을 것을 먹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옥마을은 스스로 변화를 했다. 그들은 한옥마을을 살리기 위해 한옥을 늘리고 자신의 점포 앞을 개방했다. 지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쉴만한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나가던 관광객 누구라도 들어가 잠시 쉬겠다고 하면 흔쾌히 허락을 하고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내온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하나라도 구해야 한다. 전주 한옥마을을 찾아왔다가 떠나는 사람마다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는 이유이다.

 

수원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단 몇 집을 돌아다녀보아도 목소리가 높아진다. 장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 의식과 개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전주 한옥마을은 그저 꿈같은 곳이다. 그들의 변화는 먼저 지신을 버리고 모두의 이익을 앞장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찾았다. 정신의 변화를 먼저 시작한 것이다. “수원 행궁동은 절대 전주 한옥마을을 따라갈 수 없다하지만 늦은 것이란 없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전문가 집단이 탁상공론을 하는 자들이라면 기대할 바가 없다. 현장에서 직접 뛰어 본 전문가들이라야 변화가 가능하다. 탁상공론으로 인해 망쳐진 환경과 계획을 수도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전주 한옥마을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직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전주한옥마을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변화가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꿈까지 깨지는 않을 생각이다. 노력하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구 125만의 전국 지자체 중 최고의 도시 수원이기 때문이다.

 

 

화성 서신면 정용래 가옥을 돌아보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오얏리길 56(궁평리)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25호인 화성 정용래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정용래 가옥은 초가집으로 1800년대 말에 지은 집이다. ''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와 행랑채가 모여 경기도의 전형적인 튼 ''자형의 평면구조를 보이고 있다.

 

요즈음은 주말만 되면 답사를 나간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제대로 답사를 하지 못해 늘 몸이 굼실거리는 것이 사는 재미도 잃어버린 듯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에는 가까운 곳이라도 빠트리지 않고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한 번 답사를 나서면 7~8곳을 돌아오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그동안 게으름을 반성하는 뜻에서이다.

 

화성시는 일개 지역치고는 많은 문화재가 소재한다. 그래서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몇 주에 걸쳐 돌아보기로 한 곳이다. 7일 이른 시간 화성으로 향했다. 이번 답사는 화성시 서신면을 중점적으로 답사하리라 마음을 먹고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선 것이다. 답사를 즐기면서 하라고 했지만 하루 만에 여러 곳을 돌아보려면 자연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초가도 이 정도면 대갓집 부럽지 않소

 

서신면 궁평리에 자리하고 있는 정용래 가옥은 산쪽으로 자리를 하고 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24호인 기와집인 정용채 가옥과 이웃하고 있다. 위쪽 정용채 가옥은 기와집이고 아래쪽 정용래 가옥은 초가집으로 조성되어 있어 한 곳에서 기와와 초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정용래 가옥은 항상 갈 때마다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집 앞으로는 소로가 나 있고 대문 앞에는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수령이 꽤 된 이 느티나무가 정용래 가옥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집 주변을 몇 바퀴 돌면서 밖에서 촬영을 하자니 산비탈까지 올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안마당이며 대문의 왼쪽에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에 행랑채가 세로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 정용래 가옥은 초가이긴 하지만 구성이 잘 되어 있어 어느 대갓집이 부럽지 않다.

 

 

 

 

집 앞 도로에서는 안채와 마주하고 있는 사랑채가 보인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굴뚝이 나란히 두 개가 서 있는 것이 이곳 사랑은 부엌이 사랑과 안사랑으로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채는 사랑채가 마주보이는 곳에 대청과 건넌방을 두고 꺾이는 왼쪽 아래로 찻방과 안방, 부엌을 두었다.

 

대청의 뒷벽에는 왼쪽으로 뒷창을 내고 오른쪽으로 벽장을 만들어서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용래 가옥. 이는 사당을 따로 두지 않는 민가에서 통상 쓰는 수법이다. 바깥마당은 사랑방 앞으로 터져 있으며 왼편에 헛간채가 있다. 정용래 가옥은 전체적으로 민가의 격식과 쓰임새를 갖추었던 부유한 농민의 집으로 추정된다.

 

 

 

 

볼썽사나운 문화재 안내판, 문화재명 바꾼 지가 언제인데

 

대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으니 그저 집 주변만 이리저리 돌아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집의 모습을 이곳저곳 꼼꼼히 촬영을 마치고나서 문화재 안내판을 보려고 했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안내판은 색이 다 흐려져 글씨를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거기다가 중요민속문화재로 문화재 명칭이 바뀐 지가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요민속자료라는 안내판과 안내 석물에 적혀 있다.

 

화성시 몇 곳을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재 명칭이 바뀐 것을 교체를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문화재를 찾아다니기도 하는데 이렇게 문화재명칭 하나 제대로 적은 안내판을 세워놓지 않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문화재는 민족의 자랑이다. 중요민속문화재는 국가에서 지정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중요민속문화재라고 해도 관리는 해당 지자체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성시 모든 곳의 민속문화재는 민속자료라고 쓴 안내판을 교체하지 않고 있다.

 

  

 

 

문화재 답사를 하는 이유는 문화재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작은 정성이다. 문화재의 잘, 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보존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것을 지적하기 보다는 좋은 것을 칭찬해주고 문제가 있는 것은 시정을 요구하려고 노력한다. 작은 힘이나마 후손들에게 온전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함이다. 문화재 안내판을 정정하고 깨끗한 글씨로 교체한다고 해서 화성시의 재정이 휘청거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화성시 문화재 담당부서에서는 관내의 문화재 안내판을 조속한 시일 내에 일제정비를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