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텔 엠배서더에서 유공자 포상 및 표창 시상식도

 

수원화성 방문의 해는 이제 끝이 아니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125만 위대한 수원시민이 일구어 낸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 결과는 올해 670만명의 관광객이 우리 수원을 찾아와 전국의 지자체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성과보고회에서 연단에 오른 염태영 수원시장은 어느 때보다 격앙된 어조로 인사말을 이어갔다. 1년 동안 수원시민 전체가 참여한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12일 오후 2시부터 수원역 로보텔 엠배서더 2층에서 가진 수원화성 방문의 해 성과보고회 및 해단식은 400여명의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 자리에는 수원시 김동근 제1부시장을 비롯하여 도태호 제2부시장 수원시 4개구청장, 수원시의회 김진관 의장을 비롯한 다수의 의원들, 수원 국회의원인 김영진 의원과 백혜련 의원, 경기도의회 김호겸 부의장을 비롯하여 도의원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한 이날 수상자 100명도 함께 자리를 해 성황을 이루었다.

 

 

수원은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할 것

 

염태영 수원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사람중심 수원은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갖고 있는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수원화성 방문의 해 실행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원도심의 개발제한 등으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면서 그동안 수원화성의 복원에 들어간 비용이 1조원이 소요되었지만 국도비는 10%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은 비용은 모두 시민들이 낸 혈세로 충당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 수원은 한해 관광객들이 2011430만명, 2012450만명, 2013520만명 등으로 점차 늘어나더니 2014460만명, 2015년은 43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경기침체와 메르스 등으로 한국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현재까지 67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 올해 예상한 700만명은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염태영 시장은 올해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그동안 준비했던 화성문화제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서울서부터 수원까지 2일에 걸쳐 옛 능행차 길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연도에서 능행차의 진수를 맛보았다앞으로는 관주도가 아닌 민간주도로 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지금부터 시민들이 주축이 된 운영단을 조직할 것이다. 또한 이번 전 구간에 걸친 능행차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는 한국적 축제의 새로운 모델로 위대한 수원시민의 성공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각계각층의 수상자들과 일일이 인사교환

 

성과보고회는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 이모저모 영상을 시작으로 내빈소개, 개회와 유공시민 기관, 단체 시상, 염태영 수원시장의 인사말과 수원시의회 김진관 의장, 국회의원 김영진, 백혜련 의원의 축사, 경기도의회 김호겸 부의장의 축사, 경기도지사와 제주시장, 전주시장, 공주시장 등과 각국 대사들의 축하메시지, 영상으로 만난 성과보고, 성과 및 향후과제 발표순으로 이어졌다.

 

오늘 이렇게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마치고 결과보고를 하는 자리를 갖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각 단체와 기관, 그리고 시민 등 100명의 수상자들도 축하하고요. 수원은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수원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될 것입니다. 수원시민들은 능히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경기도의회 김호겸 부의장은 수원시민은 위대하다면서 앞으로 수원이 세계의 중심도시로 자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수원시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능행차는 세계적인 거리축제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일천만명 관광객이 수원을 찾을 수 있도록 꼭 만들어야죠보고회에 참석한 김아무개()씨는 수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면서 이제 수원시민 모두가 단결하여 세계최고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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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가 만난’ ‘왕의 길

 

수기사란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를 말한다. 한 마디로 사진작가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주로 수원의 각종 행사며 관광지, 수원의 인물 등 수원과 관련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여섯 번째 사진전은 바로 왕의 길이다. ‘정조대왕의 원행을 보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11일 팔달구 행궁동에 자리하고 있는 대안공간 눈의 1, 2 전시실에 마련한 수기사의 여섯 번째 사진전을 찾아가보았다. 크지 않은 액자에 담아 걸어놓은 각종 사진들 속에는 올해 ‘2016수원화성 방문의 해에 정조대왕의 원행을 그대로 재현한 화성 행궁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정조대왕의 거둥행렬이 서울을 출발하여 수원화성에 도착할 때까지의 각종 사진들이 걸린 왕의 길전시. 그동안 이들이 계속해 수원을 기록하면서 만난 가장 큰 행사였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참여를 했고 정조대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사진만 만나보아도 그 장관을 알아볼 수 있다.

 

 

11명의 참여작가가 그려낸 왕의 길

 

정조대왕의 원행 길에 따라나선 작가는 모두 11명이다. 강관모, 고인재, 김미준, 김태왕, 남기성, 이규석, 이연섭, 이용규, 한정구, 홍채원 등이다. 그들이 능행차를 따라가면서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는 중이다. 1222일까지 대안공간 눈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사진전은 그동안의 수기사 사진전과는 색다르다.

 

우선 하나의 주제를 갖고 사진촬영을 했다는 점이다. 바로 정조대왕의 이틀간에 걸친 능행차를 옛 모습대로 재현한 것이다. 108일에는 창덕궁을 나서 숭례문을 지나 노들섬의 부교를 건넌 후 노량행궁을 지난 후 시흥행궁에서 멈췄다. 아침 830분부터 시작하여 오후 6시까지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9일에는 경기도 구간으로 금천구청을 떠난 능행차 행렬은 안양역을 지난 후 의왕시청 별관사거리를 지나 지지대고개를 넘어섞고 수원종합운동장 앞을 거쳐 화성 행궁 앞에서 연무대로 향했다. 연무대에서정조대왕 화산능행차가 2일간의 전 과장을 마친 것이다. 그 길을 수기사 회원들이 따라가며 기록한 사진이다.

 

수기사란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로 수원의 모든 모습들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시민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다. 이들 수기사는 유관기관과의 정보를 공유하는 순수사진가들의 모임을 말한다. 수기사의 사진작가들의 시야로 본 정조대왕의 화산능행차의 장면들을 기록한 사진전이다.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면 좋을 전시

 

이번 전시는 단순히 수기사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아니다.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여러 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볼만한 전시회란 생각이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면 좋을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보아오던 아름다운 풍광이나 인물들을 표현한 전시회와는 다르다.

 

오늘 휴일이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시진전을 보기위해 나왔습니다. 모처럼 가족들이 외식도 할 겸 나왔는데 좋은 사진전을 만났네요.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니 아이들도 좋아하고요. 전시를 마칠 때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그 안에 가족들과 함께 전시도 보고 맛있는 식사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실에서 만난 이아무개(, 48)씨는 모처럼 가족들이 함께 전시도 보고 식사도 하기위해 나왔다고 하면서 의미있는 전시회니만큼 가족들이 함께 관람을 하면 좋을 듯하다고 한다. 수원을 기록하는 사진가회에서 마련한 정조대왕의 화산능행차를 따라나선 왕의 길’. 화성문화제 기간동안 능행차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 전시회에서 그 날의 감동을 느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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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문과 창룡문에 어처구니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다. 또한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정조의 정치적 포부가 담긴 곳으로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삼기 위해 한양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곳이었다.

 

둘레의 길이 5,744m인 화성은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축성이 되었다. 성내의 시설물로는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5,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6개 시설물(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현재는 42개 시설물이 남아 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의 문신인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1793년에 저술한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하여 축성을 하였다.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1월에 착공하여 17969월에 완공을 하였다. 화성 축성 시에는 거중기와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蒼龍門)’. 이 이름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동방을 ()’이라고 하는데 그 청을 상징하는 것인가 보다. 창룡문은 한국전쟁 당시 크게 소실된 것을 1978년에 복원하였다. 창룡문은 홍예의 크기만을 놓고 볼 때는 장안문보다 더 크다. 안팎으로 홍예를 설치하였는데 안쪽은 높이가 16척 너비가 14, 바깥쪽은 높이가 15척 너비가 12, 전체 두께는 30척이다.

 

화서문(華西門)’은 화성의 서문으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이 되었다. 서문인 화서문의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동문인 창룡문과 같다. 다만 좌우의 돌계단을 꺾어지게 해서 층을 만든 것이 다르다. 화서문을 둘러쌓고 있는 서옹성의 제도는 동옹성과 동일하며, 높이는 11척이다.

 

 

창룡문과 화서문, 용두는 있는데 어처구니는 어디로?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 손실되었다. 파손된 부분을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동문인 창룡문과 서문인 화서문, 그 위 문루에 올라서 난 무엇을 보았을까?

 

가끔 TV 프로에 보면 궁에 가서 어처구니라는 것을 갖고 내용을 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궁에는 어처구니라는 것이 있다. 흔히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궁궐의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다. 서역을 갔다 온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언제 우리의 궁궐로 온 것일까? 이 궁궐 처마에 올라타고 있는 잡상을 어처구니라고 한다.

 

국어사전에 어처구니를 찾아보면 '상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때도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한다. 이때의 어처구니는 요철도 구멍도 없이 꽉 막혀 도통 통하지가 않는다는 말의 뜻을 갖고 있다.

 

 

 

이 어처구니가 궁궐의 지붕 위에 있는 잡상이다. 지붕위에 어처구니를 올리는 이유는 이러하다. 궁궐을 지을 때 기와를 올리는데 기왓장의 측면에 계단식의 홈이 한 줄 파여 있다. 이것은 빗물이 새지 않도록 정밀하게 맞물려지도록 하는데 이것을 '어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어처가 없다면 기와의 줄을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즉 어처구니는 이 어처공이라는 말이 된다. 이 어처를 막기 위한 것이 바로 흙으로 구워 만든 동물이다. 흔히 잡상이라고 하는 어처구니는 올리는데 순서가 있다. 새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태는 취두라 하고, 새 꼬리 모양은 치미, 망새라고 부른다. 용두는 취두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내림마루 끝에 있으며 그 밑 추녀마루에 잡상을 올린다.

 

잡상이 서 있는 순서를 보면 대당사부라는 삼장법사가 맨 앞에 무릎에 손을 짚고 서 있다. 그 뒤로는 손행자(孫行者)라 불리는 손오공, 저팔계(猪八戒), 사화상(沙和尙=사오정), 마화상(麻和尙), 삼살보살(三煞菩薩),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 이귀박(二鬼朴), 나토두(羅土頭)의 순이다. 이 장식들은 잡귀들이 건물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화서문과 창룡문에는 이 어처구니가 없다. 화성성역의궤의 창룡문 내·외도와 화서문 내·외도를 보면 어처구니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장안문과 팔달문에는 어처구니가 있는데 이 동·서문에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일까? 아마 복원이나 수리 등을 하면서 어처구니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사라진 어처구니 이젠 제대로 복원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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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야 할 때

 

흡혈귀 드라큘라는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단편소설의 책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그 흡혈귀 드라큘라는 수많은 소재로 발전하면서 TV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가 아니라, 좀 더 매력적이고 섹시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중국 항저우의 송성가무쇼는 송나라 때의 전설과 역사를 표현한 공연으로 이제는 세계 3대 공연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이 쇼의 영어 제목은 ‘The Romance of the Song Dynasty’이다. 약 천 년 전 송조의 고도 항저우를 중심으로 한 신화와 전설, 자연 그리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치열했던 전쟁 등을 4개의 단막극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宋城千古情>이란 이 가무쇼는 그 규모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이 관객을 압도한다. 450명의 출연진이 한번에 3,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대형극장에서 일 년 내 공연하는데도 연일 좌석이 만석이라고 한다.

 

수원에는 수원화성과 더불어 자랑스러운 무형의 문화유산인 무예24가 있다. 매일 신풍루 앞에서(우천 시나 월요일 제외) 오전 11시에 공연을 하는 무예24기 시범은 항상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한다. 이제는 무예24기가 수원을 상징하는 공연종목으로 수원화성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수원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무예24공연할 수 있는 전용극장 시급하다

 

지난 일요일(23) 신풍루 앞을 지나는데 어디서 대북소리가 난다. 그러더니 우렁찬 함성으로 장용영 군사들은 출전하라고 호령을 한다. 신풍루 위에 갑옷을 입은 군사 한명이 북을 울리더니 칼을 뽑아들고 장용영 군사들에게 출전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많은 외국인들은 연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외국에는 자신들의 문화콘텐츠를 이용해 많은 이득을 창출하고 있다. 문화콘텐츠는 무한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의 경우 자신들의 역사적인 문화재 등을 갖고 그곳에서 이야기꺼리를 도출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연극이나 영화로 제작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 것에 비하면 수원은 적지 않은 문화콘텐츠를 갖고 있는 셈이다. 화성이야 세계문화유산이지만 그것만 갖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는 한계가 있다. 요즈음 관광객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공연을 접한다. 중국은 그런 점을 이용해 일개 항저우에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무예24기는 날이 춥거나 너무 덥거나 비가오거나 눈이 오면 공연을 할 수가 없다. 전용극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가에 무예24기 공연단이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전용공연장이다. 이런 공연장을 조성해 사계절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성남사당바우덕이 풍물단이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아주 추운 계절에 관광객이 없을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주말공연을 한다. 공연 때마다 꽤 많은 관람객들이 공연장을 찾는다.

 

 

수준 높은 콘텐츠를 활용해 입장료 받을 수 있어야

 

이번 수원화성문화제 때 서울에서 출발한 정조대왕의 능행차가 서울을 출발해 수원에 도착할 때까지 거리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대단한 엣 임금의 능행차를 보기 위함이다.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거리로 나와 능행차 시연단과 함께 걷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것을 보면서 수원은 문화콘텐츠의 보고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수원은 이상하게 우리 전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인지 냉대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례로 우리가 흔히 외래문물이라고 하는 문화의 축제에는 많은 예산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그렇게 예산을 들여 축제를 열어도 외지 관광객들이 얼마나 들어오는 것인지 그들이 수원에 와서 얼마나 많은 경비를 쓰고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거의 초청 인사들이 참관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원만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국적도 알 수 없는 해괴망측한 내용을 스토리텔링 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수원만의 무예24기나 옛 경기재인청의 공연 내용 등을 개발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을 건설하고 날마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수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이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한다. 얼마든지 항저우를 능가할 문화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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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천 복원사업 및 변천사 특별사진전시전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해 수원 도심을 가쳐 흐르는 하천을 말한다. 수원천의 복원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나?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사진전이 지동교에서 열리고 있다. 수원천 복원사업은 화성의 역사 문화성을 복원시키는 프로젝트였다. 하천복원은 큰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생태하천인 수원천의 복원은 화성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문화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수원천을 본래 생태환경과 가까운 자연친화적 하천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것이 수원천 복원의 사업목적이다. 또한 하천의 건천화를 방지하고 도심하천의 생태를 복원하며 수변공원 조성 등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수원천의 복원은 주변지역의 정체성을 되찾고 낙후성을 탈피하는데도 일조를 한 것이다.

 

수원천의 옛모습 찾기는 하천복개사업 중지 후 옛모습 그대로의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하고 수원천 상류로부터 폭 30m, 길이 1,2km 구간에 걸쳐 사업을 실시하였다. 자연천의 복원은 생태적 자연환경을 되살려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생태하천을 돌려주고 도시안전의 확보는 물론,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시행하였다.

 

 

수원천의 옛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어

 

18일 오전부터 지동교에는 수원천의 엣모습을 볼 수 있고 복원의 필요성을 알리는 전시가 열렸다. 지동교 일부구간에 설치된 수원천 복개 프로젝트의 당위성과 복원 후 지역경제와 화성의 문화성과 주민들의 정체성을 되찾는 이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람들은 수원천의 옛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면서 복원된 수원천이 다행스럽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한다.

 

예전 제가 어렸을 때는 수원천에서 목욕도 하고 여름철 피서를 하기도 했죠. 그러나 수원천 복개 후 사람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어요. 한 마디로 자연을 인위적인 복개라는 것에 빼앗겨 버린 것이죠. 지금은 복원을 시켜 놓았지만 예전 복개 전에 비하면 아직 제대로 된 수원천을 되찾기에는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전시를 보고 있는 김아무개(, 77)옹은 예전 수원천이 그립다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복원을 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면서 자연은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다라는 말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고 한다. 수원천을 복원시키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후손들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옛날을 추억하는 어른들

 

수원천의 복원에 사람들이 무슨 관심을 보일까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어른들의 반응은 남달랐다. 자신들이 어릴 적 놀이터로 사용했던 수원천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맑은 물이 흐르던 수원천이 복개 후 물이 오염되면서 수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한 마디로 어린시절 추억을 빼앗겨버렸다는 것이다.

 

수원사람들에게 수원천은 남다른 곳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하천을 복개를 해버려 물이 오염되고 환경이 달라진 것이죠. 이렇게 수원천 복원 프로젝트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하면 아마 지금은 냄새가 풍기는 썩은 물이 흐르는 추악한 하천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 사진전을 보니 옛 생각이 나네요

 

 

수원천 복원사업 및 변천사 특별사진전시전을 관람하고 있던 조아무개() 어른은 사진을 보면서 옛 추억이 생각난다고 한다. 마땅하게 놀이기구가 없던 예전에는 수원천만 한 놀이터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곳에서 헤엄도 치고 물고기도 잡았다고 하면서 그때는 자연이 살아있는 하천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조아무개 어른은 사람들이 자연을 한 번 훼손시키면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 수원천을 보면서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복원을 시킨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수원천 특별사진전을 찾아가면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원천의 변천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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