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이 막바지에 들었다. 지난 6일이 한 겨울이 시작한다는 입동(立冬)이다. 입동이 되면 사람들은 김장준비를 한다. 올해는 배추 값이 폭락해 벌써부터 배추가격으로 인해 농촌에서 곤란을 겪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배추 값이 떨어진 만큼 고춧가루 값이 뛰어 김장을 하는 집에서는 지난해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에 김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야 집에서 김장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저 이곳저곳에서 보내주는 한 통씩 갖다 주는 김치로 한 겨울을 나고는 한다. 수원이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은 이렇게 나누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김치가 왜 그렇게 많아야 되느냐고 하겠지만 우리네들은 김장을 한 겨울 양식이라고 할 정도로 겨울철 반찬으로는 꼭 필요하다.

 

이천은 설봉호 주변에 많은 볼거리들이 몰려있다. 설봉호의 경치는 가을이 되면 압권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너른 주차장은 언제나 차들로 들이찬다. 이곳 설봉호 주변에는 설봉산성을 비롯해 보물 제822호로 지정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이 산자락 바위면에 부조로 조성되어 있는 고찰 영월암 등이 자리한다.

 

또한 설봉서원을 비롯해 관고리 오층석탑 등 설봉호수 주변을 돌면서 즐길만한 것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 이천은 봄이되면 백사면 도립리의 산수유가 유명하다. 도립리 산수유축제는 전국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더구나 산수유마을 인근에 천연기념물인 이천 백송과 반룡송이라 이름붙인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

 

 

가을에 찾아간 설봉호 단풍 아름다워

 

설봉호 주차장 옆으로 오를 수 있는 영월암은 경사가 심한 곳이라 차로 오르기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영월암을 오르다가 보면 이천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하여, ‘북악사(北岳寺)’라 칭하고 산 이름도 북악(北岳)이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실증적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주차장에서 영월암까지의 거리는 1.5km 정도이다. 크지 않은 영월암에는 이천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가 있다. 이는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럼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영월암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한 절로 추정하고 있다. 그만큼 유서 깊은 고찰이다. 차를 갖고 이곳 설봉호수를 찾아갔다고 하면 꼭 한 번 영월암에 올라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설봉호는 이천시 관고동에 있는 저수지로 설봉저수지 혹은 관고저수지로도 불린다. 면적은 99,174평방미터이며 둘레 1.05km 수심은 99m이다. 설봉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천시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관개 및 관광개발을 목적으로 1969년 농림부 및 경기도의 저수지 조성 승인을 받아 1970년 완공되었다.

 

 

80m의 고사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주변으로 무지개가 아름답게 펼쳐지며 호수 주변으로 세계 유명작가들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설봉국제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저수지를 따라 둘려진 순환도로는 산책코스로 이용되고 있으며 주변이 유원지화 되어 다양한 즐길거리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이천의 진산인 설봉산과 인접해 있으며, 향토유적 제14호인 영월암, 설봉서원지, 영무정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설봉호는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몰려온다. 설봉호 주변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노랗고 붉은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곳의 단풍은 색이 진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설봉호를 따라 한 바퀴 돌면 왜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이곳을 찾아오는지 이해가 간다.

 

 

고려 초기에 조성한 거대마애불

 

높이 9.6m의 거대한 이 마애불은 마애여래불로 명칭을 붙였지만, 민머리 등으로 보아 마애조사상으로 보인다. 둥근 얼굴에 눈, 코와 입을 큼지막하게 새겼다. 두툼한 입술에 넙적한 코, 지그시 감은 눈과 커다랗게 양편에 걸린 귀. 그저 투박하기만 한 이 마애불에서 친근한 이웃집 어른을 만난 듯하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모두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왼손을 안으로 향했다.

 

얼굴과 두 손만 부조로 조성을 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우편견단의 형식으로 조성한 법의는 몸 전체를 감싸며 유연한 사선으로 흘러내린다. 이러한 옷의 주름이나 팔꿈치가 직각으로 굽혀진 것은 고려시대 마애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마애불은 그 형태로 보아 조사상이나 나한상으로 보기도 한다.

 

천 년 세월을 온갖 풍상에 저리도 의연하게 서 있는 마애불. 머리 부분은 암벽의 상단에 조각이 되어 올려다보면 몸에 비해 조금은 작은 듯도 하다. 전체적인 균형은 조금 비례가 맞지 않은 듯하지만, 저 단단한 암벽을 쪼개고 갈아 내어 저런 걸작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많은 사람들 찾아와 사진 촬영하느라 난리

 

천안섬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

천안섬거리라는 민요가사에 나오는 사설의 내용이다. 이 능수는 휘늘어진 버들을 의미한다. 이렇게 늘어진 버들을 우리는 흔히 능수버들이라고 한다. 이 버들을 능수버들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천안 인근에 홀아비 한 사람이 능소(綾紹)’라는 어린 딸과 함께 살았다. 이 부녀는 비록 가난하긴 하였지만 정이 깊었다. 그런데 능소의 아버지가 변방의 수자리로 뽑혀가게 되었다. 능소의 부친은 변방으로 가다 천안삼거리에 이르러 더 이상 어린 딸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주막에 딸을 맡겨 놓는다. 아버지는 딸 능소에게 '이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다시 너를 만나러 이곳으로 올 것이다'라고 한 뒤 홀로 떠났다. 나중에 수자리에서 돌아 온 아버지를 만난 능소는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런 전설이 있어서인가? 능수버들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춤을 추듯 출렁거린다. 이 계절이 되면 능수버들은 제멋에 겨워 춤을 춘다. 우리가 흔히 민요가사에서 이야기하듯 제멋에 겨워 휘늘어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런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 바로 수원천이다. 수원천은 정조대왕이 버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유천(柳川)’이라고도 불렀다,

 

정조대왕 버드나무를 심다.

 

예전 병조에서는 입춘(立春),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일과 땅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토왕일에 불을 만들어 각 궁에 진상하고 모든 관아에 나누어주었다. 병조에서는 봄에는 두릅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은행나무, 가을에는 갈참나무롸 느릅나무, 그리고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에서 불을 취했다.

 

이렇게 각 계절마다 다른 나무를 이용해 불을 취했으며 입춘일인 봄에 버드나무를 이용해 불을 취한 까닭은 버드나무의 잎이 가장 먼저 돋기 때문에 그런 기운을 얻어 질병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조가 특히 버드나무를 좋아한 것은 왕버들이었는데 그 버드나무의 줄기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아 임금을 상징하는 ()’을 의미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조대왕은 버드나무를 유난히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새롭게 발견된 '신풍누도'라는 제목의 채색 그림을 보면 수원화성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주변에 온통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화성전도를 보아도 화성 성밖으로 온통 버드나무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버드나무를 심은 것은 강한 국권을 만들이 위함인가?

 

정조가 현륭원(사도세자의 묘.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한 이후 융릉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대나 용주사 일대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버드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재위 15년째인 1791년이다. 그해 1571주를 심기 시작해 몇 년에 걸쳐 수차례 버드나무를 심고 가꾸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제방을 쌓은 곳에도 심게 했다. 버드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이다.

 

그렇게 버드나무를 좋아한 정조대왕이 축성한 화성답게 많은 버드나무와 관련된 명칭들이 전한다. 17일 오후, 방화수류정 인근에 지인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 수원천 가에 늘어선 버드나무가 절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촬영도 하고 그 아래를 걸어가면 버드나무 잎을 손으로 쓸어보기도 한다.

 

 

초록잎과 가지가 늘어진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늘어진 버드나무 하나만으로도 정조대왕을 떠오르게 만든다. 222년이 지난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버드나무는 그 당시에 심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전조대왕이 이루고자 했단 강한 국권과 백성을 사랑하는 위민정신이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늘어진 버드나무를 보면서 천안삼거리를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다양한 체험과 볼거리와 먹거리 등 풍성

 

54회 수원화성문화제가 21일 전야제 행사로 타종식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22일 오후 수원화성 동장대인 연무대와 창룡문 일원을 돌아보았다. 수원화성 행궁 일원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복잡할 것만 같아 개막행사를 취재하기로 마음먹고 그 이전에 화성문화제의 다양한 모습을 취재하기 위헤서이다.

 

9월의 날씨치고는 핸 낮의 햇볕이 따갑다. 저녁 일몰 후를 생각해 긴 윗옷을 걸친 것이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만큼 날씨가 쾌청하고 좋은 날이기에 돌아보는 내내 손수건을 꺼내들고 땀을 닦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연무대 일원도 사람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닌다. 외국인들까지 출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외국인도 적잖이 눈에 띤다.

 

연무대 국궁터 앞에서는 축성체험이 이루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부모님들까지 거중기에 매달려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창룡문 앞쪽에서는 24일 밤에 연희될 화성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야조연습을 하느라 검을 이용하는 출연자들과 장창을 손에 쥔 출연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보고, 먹고, 즐길 수 있어야 좋은 축제

 

오늘 직장을 일찍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화성문화제 구경을 하기위해 수원을 찾아왔어요. 오전에는 행궁 광장에서 각종 공연 등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화성어차를 타고 이곳에 와서 즐기고 있습니다. 화성 축성 현장을 직접 경험해 보니 과거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뛰어난 분들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왕시에 거주한다는 정아무개(, 41)씨는 아들, 딸과 아내와 함께 한 가족 모두가 화성문화제를 즐기기 위해 수원을 찾아왔다고 한다. 축제는 많은 체험과 즐기고 먹고. 볼것이 많아야 된다면서 수원화성문화제는 그런 다양한 관광의 기능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아 좋다는 것이다.

 

정아무개씨는 오후에는 연무대 일원에서 열리는 성 쌓기인 축성체험과 깃발체험을 즐긴 후에 해가 떨어지면 지동교 푸드트레일러를 방문하고 난 후 통닭거리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통닭을 먹겠다면서 일정까지 자세하게 소개를 한다. 화성문화제를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화성문화재의 꽃 야조연습도 볼 수 있어

 

연무대 앞 국궁터와 창룡문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24) 폐막공연으로 실연될 야조를 연습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 연출자의 목소리는 연신 스피커를 통해 지시를 하고 있고 출연자들은 지시에 따라 병기를 들고 이리저리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다.

 

기합소리와 함께 쌍검을 휘두르고 장창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야조 출연진들. 얼굴은 더위로 인해 벌겋게 상기되어 있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연습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에서 화성문화제 출연진들이 전국 최고의 문화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있는지 가늠이 된다.

 

 

"수원 화성 일대가 모두 문화제 때문에 볼거리가 넘쳐나요. 먹을 것과 즐기고 볼 것들이 많아 화성문화제가 전국적으로 따져보아도 그 어디에도 뒤쳐지지 않는 축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화성을 한 바퀴 돌고 있다는 이 아무개(, 38)씨는 수원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수원을 찾아 온 친구들도 야조를 연습하는 출연자들이 멋있다고 하면서 시간이 허락하면 야조까지 보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수원화성문화제 첫날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점점 그 흥이 고조되고 있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더 많은 등불로 화성문화재 위상 높여

 

수원화성문화제 전야제가 시작하기 전 돌아본 수원천. 환하게 불을 붉힌 정조대왕의 능행차 일부분과 무예24기 모형의 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수원천을 걷는 사람들은 밝게 조형된 등불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등을 촬영하기에 바쁘다. 몇 년 전부터 마련한 등불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등불축제는 수원천 천변 길에 조성한 것이 아니고 수원천을 따라 조성됐다. 몇 년째 등불축제는 지나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든다, 남수문에서 매향교쪽으로는 정조대왕의 어가행렬이 마련되었다. 말을 탄 호위대장과 그 뒤에 대왕의 어가행렬이 따른다. 정조대왕의 어가 앞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가마가 자리한다.

 

통닭거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매향교 방향으로 걸다보면 무예24기 시범 등을 만날 수 있다. 격구, 쌍검, 월도, 마상재 등 다양한 동작을 하고 있는 등이 눈길을 끈다. 환하게 켜진 등불을 따라 걷다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등을 배경으로 사진촬영 등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많은 사람들 등불축제에 빠져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면 수원천에 장식하는 등불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매년 이렇게 열리는 등불축제가 딴 곳과는 다르게 수원의 상징인 정조대왕 능행차와 무예24기 종목이기 때문에 늘 사진을 찍어 진구들에게 자랑을 하곤 합니다. 오늘도 사진을 찍어 보내려고 나왔어요

 

등불축제를 휴대전화에 담고 있던 송아무개(, 31)씨는 이렇게 촬영해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면서 수원화성문화재 때는 볼거리가 많아 즐겁다고 한다. 등을 촬영하는 사람들 대개가 SNS를 통해 수원화성문화제를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즈음은 SNS를 누구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휴대전화와 SNS의 사용으로 인해 수원시민 누구나 수원을 홍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해 이웃들에게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정해진 홍보매체를 통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수원을 홍보할 수 있는 SNS의 발달로 인해 시민 누구나 다 홍보요원이 된 셈이다.

 

 

등불축제 좀 더 다양하게 마련되었으며

 

수원천에 선보인 등불축제를 보면서 조금은 아쉬운 감이 든다. 더 많은 등불이 전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수원을 대표하는 지역축제이다. 수원을 외부에 알려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과 같은 수원화성문화제의 진행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종목의 행사를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류의 종목을 보여준다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몇 개 종목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능행차는 서울서부터 화성시 융건릉까지 전 구간에 걸쳐 시연된다. 그만큼 수원화성문화제의 백미는 능행차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능행차와 더불어 정조대왕의 뜻과 정조의 친위무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발이는 야조, 그리고 수원시민과 단체들이 참여하는 퍼레이드와 등불축제 정도만 집중적으로 키워 진행하는 것도 연구해볼 만하다. 그 외에 부수적인 것을 다양하게 벌이는 것보다는 축제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몇 개의 종목으로 함축시켜 수원화성문화제하면 수원을 찾아와 무엇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축제 30선안에 들어간 축제를 보면 많은 종목이 아닌 단 몇 가지 종목으로 백만 이상의 외지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축제는 늘여놓는 것이 아니라 외지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수원천에 마련한 등불축제를 보면서 화홍문서부터 영동교까지의 수원천에 등을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축제는 늘이는 것이 아니라 집약되어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잘 정리된 능침,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나에게 가을이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늘 답사를 다니는 나로서는 그 이상의 계절이라는 의미는 무의미하다. 다만 많이 걸어도 땀이 덜 흐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을은 바람직한 계절이다. 그런 계절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돌아보는 인근지역 답사. 얼마 안 있으면 수원화성문화재도 열리고, 정조대왕의 능행차가 서울서부터 시흥, 수원, 화성까지 이어지며 전 구간에서 시연된다고 한다.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능까지 이어질 능행치 생각에 가까운 곳에 소재한 사적 제195호인 효종대왕능을 찾았다. 효종대왕능은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세종대왕능인 영능(英陵) 옆에 자리하고 있다. 세종대왕능은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합장능이고 영능(寧陵)은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이다.

 

 

벌써 한 이태는 지났을 듯하다. 여주에 잠시 거주하고 있을 때는 오가는 길에 늘 들렸던 곳이다. 2년 만에 찾아간 효종대왕능도 주변이 변했다. 재실 바로 앞에 있던 주차장이 멀찌감치 떨어져 나왔고, 앞에는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좁던 주차장도 여러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혔다.

 

그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입장료만 해도 상당한 금액을 지출했다. 대개의 문화재가 입장료를 받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경노우대라고 하여 웬만한 곳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돈을 내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점이 괜히 씁쓸해진다. 아직도 돌아볼 곳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보물로 지정된 효종대왕능 재실

 

효종대왕능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재실이다. 효종대왕능의 재실은 보물 15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치하와 6,25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많은 능의 재실들이 소실되기도 했는데 효종대왕능의 재실은 원형 그대로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재실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각에서 보이는 담장 밖 굴뚝이 효종대왕능 재실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바로 재실 외벽을 심벽으로 조성하고 그 심벽 안으로 연도를 냈기 때문이다. 재실 외벽 곳곳에 기와 몇 장을 포개놓은 곳이 보인다. 이 기와가 바로 굴뚝 역할을 하는 것이다. 능침 어디를 보아도 이런 조성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하나 만으로도 사람을 들뜨게 한다.

 

재실 담장 안에는 수백년 묵은 회양목 한 그루가 서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495호로 지정된 회양목이다. 일반적으로 회양목이 거목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효종대왕능 재실 회양목은 크기도 크거니와 수령이 이미 300년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 앞에는 보기에도 엄청난 거목들이 담장과 함께 늘어서 있어 전각의 멋을 더하고 있다.

 

 

북벌을 꿈꾼 효종대왕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능침으로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작은 내를 건너가는 길이 나온다. ‘왕의 숲길이라는 이 길은 세종대왕의 능과 연결이 되는 숲길이다. 그저 타박타박 걸어가면 좋을 이 길은 주변에 물이 흐르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숲을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힐잉이 되는 길이다.

 

앞에 홍살문이 보이고 그 뒤로 정자각과 능침이 보인다. 효종대왕능의 정자각은 최근에 해체보수 하였다. 정자각을 앞에 두고 좌측에는 2006년에 발굴조사 후 복원한 수라간이, 우측에는 수복방이 있다. 그 앞을 보면 참도에 놓인 금천교를 건너게 된다. 효종대왕능의 금천교는 홍살문 안에 자리하고 있어 색다르다. 대개 능원의 금천교들이 홍살문 밖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대군시절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가 8년간 생활한 효종대왕. 그곳에서 살면서 효종은 늘 북벌을 마음먹었다. 효종의 북벌의지는 정예화 된 포병 10만명을 길러 기회가 있을 때 오랑캐들을 공격할 것이며 이 일은 10년 안에 추진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기에 효종대왕은 재위기간 동안 늘 북벌을 꿈꾸면서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달래는데 노력하였다.

 

효종대왕은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경제적으로는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또한 상평통보를 널리 쓰이게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효종대왕의 머릿속에는 강한 나라를 만들어 북벌을 하겠다는 의지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41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북벌의 의지는 계획으로만 남게 되었다.

 

가을초입에 찾아간 여주 효종대왕능. 곳곳에 보수공사를 하느라 조금은 관람에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보수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문화재이다. 잠시의 불편을 참는 것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기 위함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 더 많은 곳을 돌아보아야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