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종교가 그럴 수 있을까? 요즈음은 그저 종교란 것들이 어째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보니 마음이 불편해지면 사람들은 곧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는 한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려암. 집 대문 앞에는 ‘경기안택굿보존회’란 간판이 걸려있다. 벌써 이 집터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지가 40년 가까이 되었다는 고성주(남, 56세). 크지 않은 몸짓에 천생 여인네 같은 모습이다.

말을 하는 것이나, 집안에 먼지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도대체 이 넓은 집을 언제 다 쓸고 닦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18세에 신내림을 받고 지금까지 한 결 같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하고 있다. “무녀가 할 일이 무엇이겠어요. 수양부리들 잘 건사하고, 늘 마음 편하게 살게 해달라고 비는 일 빼고는” 그래서인가 이 집의 단골들은 대개가 대물림 단골네들이다.


“아버님, 저희 아이가 잘될까요?”

나이가 동년배 인듯한 여인이 고정주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곧잘 귀를 의심하게 된다. 비슷한 나이에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저렇게 스스럼없이 쓰다니. “어멈아, 걱정하지마. 올 해는 잘 될 거야. 3~4월까지는 조금 힘들겠지만, 그 달 지나면 다 풀릴 테니.” 아버님이란 호칭이나, 어멈이라는 호칭이 그저 불편함이 없이 들린다. 그 또한 이 집의 내력인 듯하다.

“예전에 신부모님들이 그렇게 수양부리들을 불렀어요. 저도 그렇게 듣고 배운 것이죠. 우리 집은 대개 대물림 단골네들이라 오히려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단골네들이 불편하다고 해요”

그저 곁에서 듣고 있노라면 그 나긋한 목소리 안에 대단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춤 잘 추고, 소리 잘하고, 굿 잘하고. 도대체 빠질 것이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 고성주라는 사람은 어쩌다가 신내림을 받은 것일까?


맞이굿에서 신나게 창부를 놀고 있는 고성주(위) 신령을 모신 전안(아래) 전안은 밝고 먼지 하나가 바닥에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신령을 모신 전안은 어둡고 더럽다면 그 곳에 무슨 좋은 신령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저는 어려서부터 신병을 앓았어요. 그런 일로 인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고 보아야죠. 저희 증조할머니께서 만신이셨고, 고모 또한 만신이었죠. 고모는 박씨네 집으로 시집을 갔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고모가 데려다 키우는 바람에, 남의 성을 갖고 살기도 했어요. 어릴 적부터 몸이 아파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를 못했어요. 한 달이면 고작 일주일이나 학교를 갈 수 있었으니, 무슨 공부인들 제대로 했겠어요.”

그런 그가 그 많은 굿에서 사용하는 문서를 외우고 있는 것을 보면, 타고난 무당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 타고난 끼도 다 그런 길을 가기위해 준비를 한 듯하다. 수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냥 보낸 적이 없다. 하다못해 바쁘게 준비한 음식 하나라도 대접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18세에 받은 신내림,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도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런 일을 속속들이 본 사람들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처음 내림을 하고 난 후 신령님들의 화분을 이천에 가서 모셔왔어요. 그런데 한 겨울인데도 뱀들이 득실거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제가 들어가니까 어디로 슬그머니 사라지데요.”

함께 동행을 했던 사람들이 정말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하기야 고성주의 기이한 행적으로 본다면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동안 수양부리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책으로 몇 권을 엮어도 모자랄 판이다. 하기야 40년 가까운 세월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명과 복을 주었으니,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필설로 어찌 다하랴.


운 맞이 굿에서 수양부리에게 운시루를 건네주는 고성주(위) 굿판에는 악사와 무녀들이 함께 동참을 한다.


“그동안 정말 많은 수양자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는 했죠. 매일 보다시피 했던 사람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들의 극락왕생을 위한 지노귀굿을 하면서 속으로 울기도 많이 했죠. 그럴 때마다 제가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라고 슬퍼했죠.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축원을 해주면서, 자식들이 모두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마 전 다음 세상에도 우리 수양자식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남의 본이 되는 것이 만신의 길이라고 하는 고성주

지노귀굿을 할 때면 유난히 공을 들이는 만신 고성주. 그가 가진 품성은 평소 하는 행동을 보면 그대로 보인다. 벌써 30년 가까이 자비를 들여 경노잔치를 열었다. 고기를 삶고, 음식을 하고 술과 음료를 대접한다. 거기다가 자신이 가르친 춤꾼들이 모여 춤을 추기도 한다. 구경을 하는 어르신들도 절로 흥이 난다. 한 해도 거르고 넘어간 일이 없다.

함께 굿을 하고 있는 신딸인 이정숙. 이들은 영적인 부녀관계이다.


“아버님 여기 있던 밥 통 어디갔어요?”
“고장 나서 내다 버렸는데”
“멀쩡한 것이 왜 고장이 나요?”
“위에서 떨어졌어”
“아니 그 무거운 것이 떨어졌으면 장판이 흠집이라도 났어야죠.”

이쯤 되면 그 밥통이 어디로 갔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남을 준 것이다. 문제는 그 밥통이 고가의 밥통이라는 것이다. 뒤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럼 어떻게 해. 어멈이 나이가 먹어서 밥을 하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있는 것 주어야지”

그렇게 집에 있는 물건들을 남을 주기를 좋아한다. 물건을 하나 사겠다고 하면, 수양자들이 먼저 알고 있다. ‘얼마나 갖고 계시겠느냐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집안을 깨끗이 하고, 남을 도우면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만신의 할 일이라고 제자들에게 누누이 강조를 한다.


3월 23일 금요일. 지동에 소재한 고성주의 집 전안(신령들을 모셔 놓은 곳)에서는 ‘운맞이 굿’이 열렸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일이 잘 풀리지를 않아 운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맞이도 아무나 할 수는 없다. 운이 들어야 한다고 한다. 이 집을 드나들다가 보면 이상한 일을 보게 된다. 수양자들이 굿 날짜를 안 잡아준다고 삐치기도 한다. 딴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3대를 대물림을 하는 신도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고성주에 대해서 잘 안다.

“평생 혼자 사시는 분이잖아요. 신령님과 결혼을 했다고 늘 말씀을 하시니까요. 아버님은 평생을 아마 자식들 걱정하다가 저렇게 늙으실 겁니다. 굿을 하나 가르치셔도 적당이가 없어요. 굿을 해도 나쁜 소리를 못하게 하시죠. 만신이 악담을 하면 그렇게 된다고요. 무조건 좋은 소리만 하라고 하시죠.”

함께 굿판에서 굿을 하던 신딸(내림을 받은 사람을 신딸 혹은 신아들이라고 부른다. 영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다)인 이정숙의 말이다. 비슷한 나이면서도 정말 친 부모를 모시듯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만신 고성주의 삶의 모습이다.

“내 잘되게 도와줄게. 다 힘들다 오 해후 년에는. 그래도 너의 대주 하는 일 잘 되게 해주마. 내가 불려주시마.”

지노귀굿(천도굿)을 할 때는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고성주


듣기만 해도 힘이 솟아날 듯하다. 7시간 정도를 지나 굿은 끝이 났다. 제단에 차려졌던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가는 수양부리의 얼굴에는, 집안에 들어설 때 얼굴에 가득했던 그늘이 보이지를 않는다. 굿을 하기 위해 차렸던 음식들을 말끔히 치우고 나서, 한 마디 한다.

“만신은 세상 사람들 마음속에 모든 시름을 다 받아야 해요. 그리고 그것을 다 풀어주어야죠. 만신이 먼저 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신령이 도와주나요? 요즈음 종교가 도대체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 마음이 아파요. 아마도 신령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두려울 텐데 말이죠. 건성으로 신령 탓만 하는 것 같아요”

3월 28일. 자신의 수양부리들이 신령님들께 올리는 진적굿을 앞두고 온갖 집안치장에 한창이다. 도배를 새로 하고, 부엌에 기물도 정비했다. 더 깨끗한 마음을 갖고 신령을 섬기기 위한 작업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런 마음가짐이 오늘까지 대물림 자식이라는 수양부리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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