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군에 소재한 고찰 신륵사를 사람들은 ‘벽절’이라고 부른다. 신륵사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경내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전탑이 있기 때문이다. 신륵사는 많은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고찰로도 유명하지만, 판소리 중고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명창 염계달이 이곳에서 득음을 하고 ‘경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륵사 경내에는 전탑 외에도 많은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남한강을 굽어보고 있는 바위 위에, 심하게 마모가 된 체 서 있는 석탑 한기가 있다. 옆에는 강월헌이 자리하고 있어, 남한강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이 삼층석탑은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나옹화상을 화장을 한 자리

기록에는 고려 말에 나옹화상을 신륵사 경내 남한강 가에서 화장을 했다고 한다. 이 삼층석탑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나옹화상을 화장한 자리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석탑은 대웅전 앞에 많이 세우는데, 이렇게 동떨어진 강가에 서 있기 때문에, 기록에 보이는 화장을 한 장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석탑은 비바람에 심하게 마모가 되었다. 화강암을 깎아 조성한 이 삼층석탑은 현재 3층의 몸돌은 멸실된 상태이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이 탑은 기단부 밑에 기단부를 한 장의 넓적한 돌로 조성을 하고, 그 밑으로는 자연 암반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강가의 암반에서 나옹화상을 떠나보냈는가 보다.


짜임새가 간결한 고려 후기의 석탑

남한강가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기단부는, 아래기단은 2단의 형태로 조각하였다. 그리고 위기단은 양 우주와 탱주를 조각하였다. 위에 탑신에는 양편에 우주를 새겨 넣었다. 그러나 몸돌의 끝 부분이 마모가 심하여 양 우주를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

몸돌 위에 얹은 지붕돌인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하다. 옥개석은 심하게 훼손이 되어, 일반적으로 석탑에서 보이는 처마가 날렵하게 솟아오른 모습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기단의 위에 덮은 지붕돌에는 앙련을 크게 새겨 넣었다.




옥개석 아랫부분에 새긴 층급받침은 3단과 4단으로 일정치가 않다. 탑의 꼭대기에 있는 상륜부는 사라져 버렸으며, 맨 위의 옥개석 위에는 둥근 구멍이 나 있다. 아마도 상륜부를 고정시키기 위해 철골로 된 구조물을 얹었던 것 같다.

나옹화상을 기억해 내다

나옹화상 혜근(1320∼1376)은 고려 말의 고승이다. 성은 아(牙)씨였으며. 속명은 원혜이다. 호는 나옹, 또는 강월헌(江月軒)이다. 이곳 신륵사에서 강월헌(원래의 강월헌은 수해로 인해 사라졌다)에 기거하였다. 여주 신륵사 앞을 흐르는 남한강에는 용이 살았는데, 나옹화상이 그 용을 굴레를 씌워 제압하였다고 하여 ‘신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신륵사에서 나옹화상이 설법을 하면 귀신도 참여를 하였다고, 정두경의 고시 ‘신륵사’에 적고 있다. 그럴 정도로 나옹화상은 뛰어난 법력을 지녔는가 보다. 유명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라는 글도 나옹화상이 지은 것이다. 이렇듯 고려 말의 고승인 나옹화상이 입적 한 후 화장을 한 장소에 세웠다는 삼층석탑.

아마도 그 탑의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나옹화상의 성정을 닮은 것은 아니었을까? 4대강 개발이라는 허명아래 파헤쳐지고 있는 남한강을 보면서, 나옹화상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글을 지었을까? 5월 19일 찾아간 신륵사 삼층석탑 앞에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