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무덥고 힘들다. 그럴 때 청량제 역할을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마을이나 산길을 다니다가 만나게 되는 동물들이다. 물론 마을에서는 주로 개나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산길에서는 가끔은 멧돼지와 마주치기도 하지만 주로 고라니를 만나게 된다. 이런 짐승들이 무덥고 힘든 답사에 웃음을 준다.

거창군 답사를 하는 날은 지난 6월 24일이었다. 한 낮의 기온이 거의 30도를 육박했으니, 그 살인적인 더위를 피할 방법이란 없다.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야 에어컨이라도 틀수가 있지만, 정작 답사를 하는 동안에는 있는 대로 땀을 흘리고 돌아다니는 수밖에.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재251호인 원천정이 있다. 이 원천정은 선조 20년인 1587년에 세운 정자로, 원천 전팔고 선생이 후학을 기르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본 정자는 맞배지붕으로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이다.


이곳 원천정은 임진왜란 때는 의병들의 모의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담으로 둘러 쌓인 원천정은 굳게 잠겨 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들어갈 방법이 없다. 관리인의 집인 듯한 곳을 통해서는 들어갈 수가 있지만, 그 집도 비어있다. 할 수 없이 원천정 주변을 돌면서, 들어갈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본다.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 흰둥이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 낑낑거리는 소리가 난다. 길에는 개가 보이지를 않는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그런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발목을 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놀라 밑을 보니, 이런 세상에나 개 한 마리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발을 앞으로 뻗쳤으니 뒤로 들어가기가 난감한가 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인 원천정

그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다. 이 녀석 이번에는 아주 얼굴을 더 바짝 앞으로 밀고 나오려는 듯하다. 그러나 덩치가 커서 좁은 문턱 아래로는 나오기가 힘든 듯. 손으로 잡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또 얼굴을 들이밀고 나오려고 한다.

“아저씨 나도 나가고 싶다고. 나 좀 어떻게 해줘봐”


이녀석 표정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이렇게 말이라도 하는 듯하다. 이걸 어쩌나? 그래도 이 녀석을 잡아 끌어낼 수는 없는 일. 그 표정을 보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이 애처로워 보인다. 정말 나오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보니 녀석의 콧등이 까진 것도 같다. 좁은 문틈으로 나오려다가 까진 것일까? 녀석을 놓아두고 뒤돌아 나오는 길에 녀석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