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귀찮아하는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집안으로 복잡하게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사람을 성가시게 만드는 일도 그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남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즐겨라 하는 분이 계시다. 팔달구 지동 295 - 7번지에 사시는 권영복(남, 69세)과 김연자(여, 66세) 두 내외분이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5년 동안 마을만들기 사업에 롤 모델이 되고 있는 곳이다. 온통 골목마다 벽화로 가득한 이곳에서, 두 분은 벌써 40년 세월을 지동에서만 살았다. 이제는 지동이 고향이나 진배없다. 두 분은 지동 벽화골목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시다. 그만큼 지동 2년 차 벽화길의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재미, 문을 열면 느낄 수 있어

 

아침 일찍 두 분이 사시는 곳을 찾았다. 골목길에는 또 하나의 지동 명물인 담벼락 평상이 설치되었고, 무슨 작업을 하는지 쇠를 잘라내는 등 분주하다. 좁은 골목길이 왁자하니 생기가 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동 벽화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물감 등이 가득 쌓여있다. 이렇게 물건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불편하면 할 수가 없죠.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요. 조금 시끄럽고 왁자한 것이 사는 것 같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저희 집안으로 드나드는 것이 더 좋습니다.”

 

 

 

불편하시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영복 어르신은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더 좋다고 하신다.

 

“사람이 흙을 밟고 살아야죠. 그렇게 살면서 이웃과 함께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서로 정을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사는 것이죠. 꽁꽁 닫아걸고 안에만 있으면, 그게 무슨 사람 사는 재미입니까?”

 

벽화를 그리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더운 날에는 얼린 물을 주고, 날이 쌀쌀해지면 커피를 타다가 주기도 한다. 수돗물을 마음대로 쓰도록 하는 것도 고마운데, 물감이며 앞치마, 붓 등, 모든 것이 대문 안 마당에 놓여있다. 그것을 일일이 정리를 하시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신다.

 

 

 

지동 생활 40년,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

 

“처음에는 여울아파트 맞은편에 살았어요. 그런데 길이 나는 바람에 집이 헐려 1995년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죠. 이 골목은 딴 곳과는 달라요. 한 마디로 정이 넘치는 골목이죠. 날이 좋을 때는 골목에 모여 삽겹살도 구워먹고, 빈대떡도 부쳐서 서로 나누고는 합니다. 그런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재미죠.”

 

골목에서 ‘꽃집할머니’로 통하는 김연자 할머니(하긴 요즈음은 66세에 할머니라고 하면 화를 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는 이곳에 새록새록 정이 붙는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벽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면, 이곳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너무 조용한 곳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림을 그리러 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오히려 즐겁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 집을 자기들 집처럼 드나들면서 왁자지껄하면 사람 사는 맛이 나기도 하고요”

 

천성이 착하신 분들 같다. 그렇기에 그렇게 몇 달이나 계속되는 벽화길의 모든 것이, 이 집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두 분이 사시는 집이, 지동 제2차 벽화길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산실 같은 곳이란 생각이다.

 

외손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내외분

 

지동 벽화길에는 유명한 꼬마화가가 있다. 바로 7세짜리 김형주이다. 형주는 두 분의 외손자가 된다. 아들이 없는 두 분에게는 외손자들만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형주는 늘 이곳에 와서 그림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형주를 지도하고 있다는 작가분도 형주의 칭찬에는 인색하지가 않다.

 

그림을 그려왔는데, 7세 꼬마의 솜씨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는 것. 직접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역시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급기야 형주가 그려 온 그림을 벽화에 인용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두 내외분과 외손자인 형주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아마도 두 분이 벽화를 좋아하고, 벽화 길 조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벽화길 조성을 마칠 때까지 두 분의 노고가 클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그림그리기를 묵묵히 도와주고 계시는 두 분. 이 분들이야말로 마을만들기 사업의 롤 모델이 아니겠는가?

 

이런 분들이 마을에 계시지 않았다면, 일일이 그 많은 물감 통이며 각종 도구들을 옮겨와야 하니 말이다. 이 골목의 벽화가 끝나는 날, 두 분을 위한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로 조촐한 잔치라도 벌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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