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다녀온 후 나누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커

 

산을 오른 지 벌써7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산을 오른다는 것이 그저 힘들고 땀께나 흐르기 때문에 왜 올라야 하는지도 모르고 산을 찾아다녔다. 남들처럼 산삼을 캘 줄도 모르고 그 흔한 더덕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산을 다녔다. 누구 말마따나 맹목적으로 산을 오른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산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산을 다닐 때는 산에 올라 다만 무엇 하나라도 채취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뻤다. 그렇게 산을 오르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면 그것을 받아 든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산을 찾아다녔다.

 

가끔은 산에 갈 때 함께 따라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산을 다니면서 내가 즐거운 일은 바로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에 가서 귀하게 채취한 약재를 나 혼자 먹기 위해서라면 의미가 없다.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산을 힘들에 오르는 이유이다.

 

 

산을 오르면서 나눔을 배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자연과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어」〈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살이를 하면서 사리에 밝아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어진 사람은 그 중후함이 산과 같다고 하였다. 또 어진 사람은 대부분 고요한 성격이며, 집착하는 것이 없어 장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산을 좋아한다는 뜻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듯 등산을 한다는 뜻은 아니란 생각이다. 요즈음은 산을 빌미로 세상을 눈속임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지혜롭기 위해서도 아니고 중후함을 키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산에 올라 자연에서 얻은 것을 남들과 나누는 즐거움 때문이다. 산에서 구해온 것들은 거의 내나 혼자 이용한 적이 없다.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있어 산에 오른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산은 나에게 있어 나눔이다.

 

 

모처럼 오른 산행과 나눔의 즐거움

 

16. 이른 시간에 산으로 향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수원시 모 동의 동장 한사람이 일주일 전부터 산에 가자는 이야기 때문에 도저히바쁜 일정 때문에 빠져 나갈 수 없는 주말을 이용해 산에 함께 오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제법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지만 고속도로는 온통 정체라는 붉은 글씨가 전광판에 표시되어 있다. 할 수 없이 국도로 내려 가다보니 시간이 꽤 소요됐다.

 

그래도 오전 중에 산행을 시작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산에 오르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만나는 즐거움은 산에 올라 그런 자연의 먹거리를 채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만으로도 즐겁고 그것을 채취하면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감사하다.

 

 

두어 시간의 산행에서 몇 가지 소중한 것들을 채취했다. 난 산을 오르면서 한 가지 꼭 지키는 것이 있다. 딱 필요한 양만 구하면 바로 산을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 이상을 한 번도 욕심내 본적이 없다. 이번 산행에서도 가장 먼저 산에 올라 필요한 것만 구하고 바로 산을 내려왔다. 함께 산행에 나선 지인도 몇 가지 산이 주는 선물을 안고 바로 하산했다.

 

그리고 산에서 채취한 것을 이용해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 점이 바로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산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바쁜 일정 속에 오른 산행이지만 그런 나눔과 친교의 자리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산을 오르겠는가? 하기에 나에게 있어서 ()’이란 바로 나눔과 친교라는 두 가지 덕목을 키워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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