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제4길 서호천길에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나로서는 이 선선한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여름 내내 취재하느라 온몸에 땀띠가 돋아 고통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 가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곧 눈이 내리는 겨울이 닥칠 것만 같다. 이젠 철도 달라져 봄, 가을이 사라지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든다.

 

그런들 어떠랴? 더위만 가신다고 하면 그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14일 오전, 모처럼 서호를 찾았다. 서호낙조를 보기 위함이 아니다. 서호 옆에 자리한 농민회관에 볼일이 있어 찾아갔다가 이왕 내친길이니 서호천을 조금이라도 걸어보고 싶어서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사람들은 그것도 역마살이라고 한다.

 

 

서호에서 북쪽을 향해 걸으면 화서2동 꽃뫼마을이 된다. 이곳은 경기도 삼남길의 제4길로 지지대비에서 이목교, 해우재를 거쳐 서호공원 입구까지 총 7.1km 구간으로 약 2시간 정도가 걸리는 길이다. 하지만 굳이 지지대비까지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걷고 싶은 만큼만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지지대고개는 정조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가 잠들어계신 현릉원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행차를 늦췄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정조임금의 애틋한 효심을 이 길에서 느낄 수가 있다. 가을이라고 해도 한 낮의 햇볕은 따갑다. 이 따가운 햇볕으로 인해 곡식이 영글어간다고 한다.

 

 

천천히 걷는 서호천길, 하늘거리는 강아지풀도 반겨

 

나무그늘로 숨어든다. 그늘만 들어가도 따가운 가을 햇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한 낮의 기온에 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길은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혼자 걸으면 쓸쓸하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수원의 산책로는 외롭지가 않다. 내가 길을 자주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지대를 향해 걷다가 서호천옆으로 내려가 본다. 강아지풀인가? 예전에는 저런 풀을 뽑아 여치집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추억조차 다 잊은 듯하다. 세상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다. 그저 바람에 하늘거리는 풀들이 그리 정겨울 수가 없다. 볕이 따갑지만 그런 풀 한포기도 길에서는 반갑다.

 

서호천 옆에 커다란 능수버들이 가지를 물가까지 늘이고 서 있다. 도심 속에서 이런 정겨운 광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수원이다. 그리고 길마다 이름을 붙여 정겨움을 더한다. ‘삼남길이란 이 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아마 등걸잠방이를 입고 괘나리 봇짐에 짚신 서너 켤레 매달고 휘적거리며 한양으로 향했을 것이다.

 

 

물소리도 반가운 이 길, 자랑하고 싶다

 

올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서호천에도 물이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다. 그동안 이 길을 몇 번이고 걸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역시 하천은 물이 흘러야 제격이다. 물소리가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위에 물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서호천 양편으로 아파트촌이 자리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주로 산길이나 집이 없는 길을 많이 다녔던 나로서는 이렇게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 반갑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자연과 동떨어지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함께 길을 걷던 지인이 자연과 현대가 접목된 그런 모습도 수용해야 한다면서 이 시대는 그런 것 자체가 자연이 아니겠느냐?”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생각을 바꿨다. 자연과 현대문명이 함께 자리한 곳도 보기에 따라 아름다워졌으니 말이다. 난 수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늘 자랑을 하고 싶다. 어느 곳에 이렇게 좋은 길이 많이 있겠는가? 가을이 내리 앉는 서호천 길을 걸으면서 이 길도 자랑하고 싶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