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의 양편에는 적대라는 구조물이 있다. 이 적대는 장안문을 지키기 위한 시설로 적대에는 홍이포를 설치하였다. ‘홍이포(紅夷砲)’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유래된 대포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네덜란드를 홍이(紅夷)라고 불렀기 때문에 홍이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홍이포는 남만대포(男蠻大砲)’라고도 부른다. 조선 영조 때 2문이 주조되었으며, 홍이포는 길이 215cm, 중량 1.8t, 구경 12cm, 최대사정거리2 ~ 5km 유효사정거리는 700m 인 전장포이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운양호 사건 때 사용되었다

 

 

강화부의 화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홍이포

 

홍이포가 처음 기록에 보이는 것은 1664년이다. 당시 강도어사 민유중이 병자호란 이후, 강화부의 미곡과 화기에 대한 보유 상황을 조사하는데, 그 목록에 남만대포라는 화기가 등장한다. 당시 강화부의 화기류는 현종개수실록현종56월 계축조에 의하면, 진천뢰 140, 대완구·대포·중포가 65, 소완구 30, 호준포 37, 각 보에는 대포 179, 진천뢰 63, 남만대포 12, 불랑기 244좌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남만대포 12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남만대포인 홍이포는 12좌로 다른 화기보다 수가 적기는 하였지만, 남만대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기술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전래한 서양포에 대해 일반적으로 불랑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불랑기는 임진왜란 시기에 해당되는 1593년 정월 이후, 명에 의한 평양성 공격을 계기로 본격적인 도입이 모색되었다. 그 당시는 서양 기술이 도입된 대포의 호칭에 대해서 특별한 구분을 두지 않았던 게 일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만대포와 불랑기를 구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불랑기와 홍이포는 다른 종류의 대포임을 알 수 있다.

 

화성의 홍이포는 영조 때 우리가 만들었다

 

홍이포는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홍이는 붉은 오랑캐라는 말로 머리털이 붉은 네덜란드인을 뜻한다. 16세기 네덜란드 선교사들에 중국 명에 전해진 서양대포를 말한다고 했고, 17세기 초 정두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받아 조선으로 전해졌다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영조실록영조79월 신사조에 기록된 훈련도감의 보고 기록에는

본국(훈련도감)에서 새로 마련한 동포(銅砲)50이고, 홍이포가 둘인데, 그것을 싣는 수레는 52폭입니다. 동포의 탄환거리는 2천여보이며, 홍이포의 탄환거리는 10여리나 되니, 이는 실로 위급한 시기에 사용할 만한 것입니다. 홍이포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예람하시도록 올리니 강동한 자들의 노고를 기록해 주소서.라는 내용이 보이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홍이포는 박연이나 하멜이 갖고 온 것이지만, 조선 영조 이후에는 홍이포를 직접 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록으로 유추해 볼 때 화성에 진설된 홍이포는 순수한 우리기슬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있다. 홍이포는 포탄이 여러 조각으로 폭발하는 산발식이 아니라 둥그런 철환 덩어리들이 목표물을 부수는 형식의 대포이다. 하기에 최대사정거리는 2~5km에 이르는 홍이포가 유호사정거리 700m에서 그 철환들이 갖는 위력은 놀랄 만 할 것으로 보인다.

 

장안문과 팔달문 양편에 적대를 만들고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적대에 놓인 홍이포.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한 홍이포가 아닌 영조 때 우리기술로 만든 홍이포. 사정거리가 700m에 이르는 이 홍이포의 위력이야말로 화성을 지켜내는 화기 중 가장 강력한 무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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